Chronicle (3)

(요 몇일 이어진 환송회 음주로 연재가 일시 중단 되었습니다. 다시 새마음 새자세로 시작합니다…)

비타민C 안정화를 목표로 새롭게 구성된 프로젝트팀 DSC 얘기까지는 전편 참조하시고 (http://blog.leenjay.com/2012/05/15/chronicle-2/), 예전 보고서 들여다 보니 당시 구성원이 나 포함 총 5명이었는데, 권순상, 김진한, 박정원 그리고 객원멤버로 당시 화장품/생활용품 연구소의 최문재 이렇게더라. 앞서 얘기한 것 처럼 A*L 의 컨설팅 결과 시작된 매트릭스 조직에서는 나이 많은 팀장과 새파란 PL 의 위상이 같아, PL 에게도 예산권, 인사권이 다 보장되었다. 문제는 PL 은 짧게는 6개월, 길어야 1-2년 정도만 지속되는 임시 조직이고, 팀은 상시 조직인데다, 프로젝트 소속 팀원의 100%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FTE 기준으로 많게는 90% 작게는 30% 만 프로젝트 업무를 하고, 나머지는 팀업무를 하게 되어 있어, 팀장과 PL 의 손발이 잘 맞지 않으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복잡하게 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경우 당시 팀장이셨던 장*섭님과 내가 궁합이 잘 맞아 큰 문제 없었지만, 다른 조직 같은 경우 소통이나 업무플로우에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 (이런저런 문제로 야심차게 도입되었던 매트릭스 조직 운용은 일년만에 전면 폐지 되었다).

화장품에 있어 비타민C 의 효능은 사실 만병통치약 같아, 굳이 여기에 다시 읆을 필요는 없겠다. 문제는 안정성 (stability) 였는데, 수분함량이나 pH, 온도등 여러가지 환경변수에 영향 받는 상당히 까다로운 원료이다. 특히나 비타민C 는 대표적인 수용성 원료라 피부흡수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비타민C 의 안정화는 시장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 회사뿐 아니라 전 장업계의 최대 화두였다. 97년 발매한 아이오페 레티놀2500이 대박을 치고 나서, 시장은 온통 레티놀 화장품 천지였다. 레티놀은 비타민 A 유도체로 비타민C 와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활성비타민인데, 역시나 안정성이 상당히 문제가 되었고, 레티놀2500 은 그 안정성 문제를 해결한 첫 제품이었다. 시장에서 얼마나 난리를 쳤으면, 식약청에서 제품에 정말 2500IU 이상 원료가 함유되어 있는지 시장에서 제품수거하여 조사할 정도였다. 따라서, 많은 화장품 업체가 제2의 레티놀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비타민C 야말로 그에 딱 걸맞는 제2의 대박후보 원료였다.

당시 시장에는 랑콤의 비타볼릭이라는 비타민C 제품이 있었는데, 레티놀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반응이 좋았다. 튜브 타입의 제품인데, 당시 대부분의 튜브제품은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었는데, 레티놀2500 처럼 알루미늄 튜브를 사용했다는 점이 독특했다. 내용물은 연한 노란색이었는데,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화되어 있지만, 일단 용기를 개봉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비타민C 분해가 진행되어 상온에서 보름정도면 튜브 입구 부터 변색이 관찰되고, 45oC 에서는 2-3일내에 변색이 관찰되기 시작이다. 아래 사진은 45oC 에 일주일 보관했을 때 비타볼릭의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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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C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노란색을 떠올리지만, 순수한 비타민C 를 본 사람은 아는 것처럼 노란색과 비타민C 는 전혀 관계가 없다. 노란색은 비타민C 의 탄소링에 2,3번 구조가 깨지면서 생기는 분해산물이 내는 색인데, 비타민C 의 대명사 레몬이 노란색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비타민C 는 노랗다고 생각한다.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렛 선물하는 이상한 풍습을 초콜렛 제조업체의 마케팅이 만들어 냈듯이, 이 역시 안정화에 실패한 제조업체의 트릭이 배후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타민C 안정화에 있어 쥐약은 주위의 수분함량이라, 일단 비타민C 를 다공성인 양극성 미세담체인 polypore 에 포집시키고, 담체의 표면을 siloxane 으로 코팅한후, 솔루겔이란 고점도 젤에 혼입시켰다. (이론적인 배경은 아래 첨부한 보고서 참조하시라). 그리고 전체 농도를 1% (비타볼릭의 비타민C 농도가 1% 였다) 45oC 에서 1개월 보관하면서 초반부는 하루단위로 후반부는 주단위로 경시변화와 함량변화를 동시에 측정했다. 그런데 오옷 이럴수가, 한달후 우리 샘플과 비타볼릭의 경시변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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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솔루젤의 영향으로 1달 보관결과 제형이 조금 깨지긴 했지만 (물과 기름층 분리), 경시적으로 전혀 변색이 일어나지 않은데다가, 잔여함량도 99% 에 달했다. 대학원때 PCR 하면서 마이다스의 손이란 말 종종 듣기는 했지만, 내가 정말 실험의 신이었단 말인가. 사실 한번 실험으로 잘 믿기지 않아 반복시험에 들어갔는데, 아직 시험이 완성되기 전에 당시 연구소 최대의 행사였던 기술전략회의가 돌아왔다.

기술전략회의는 연구소에서 사장님은 물론 마케팅 주요 임원 및 팀장들 모시고, 차세대 전략과제 후보를 발표하는 행사로, 여기서 채택되면 연구소 다른 과제에 우선하여 여러가지 지원을 받게 된다. 당시 연구소 내에서 내 프로젝트를 마케팅했던 캐치프레이즈가 “순수한 비타민C 는 노랗지 않습니다”. 비타민C 제품을 미백에 촛점을 맞춘다면 흰색의 로션 혹은 크림형 제형과 미백이란 이미지 자체가 맞을 뿐 아니라, 캐치 프레이즈 자체가 뭔가 도발적이라 연구소에서는 잘 먹혔다. (나중에 빙그레에서 이 컨셉을 훔쳤는지 바나나는 노란색이 아니다 어쩠다 광고하는 것 보았다.)

아직 재현여부가 100%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전략회의까지 올리기에는 PL 로서 상당히 부담이 되었지만, 당시 응용피부과학연구소가 설립 2년째를 맞으면서, 변변한 연구실적이 없었고, 후보대상인 다른 프로젝트는 사실 DSC 프로젝트처럼 눈으로 보이게 (노란색 vs 순수흰색) 아웃풋 이미지가 뚜렷하지 않았다. 예의 그 선배 소장님께서 나를 불러 “너 이거 정말 자신 있는 것 맞아?”, “예 100% 입니다” (그 소장님 ROTC 출신이라 그 앞에서 이렇게 대답안하면 그 대답 들을때 까지 반복해서 질문하신다), “그럼 가자. 나중에 안 되면 우리 같이 죽자”.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글의 흐름상 하나 놓치고 얘기 않은 게 있는데, 98년 IMF 직후 얼마나 기업에서 R&D 투자를 줄였는지, 그해 9월인가 10월인가 과기부에서 연말 몇달을 앞두고, 민간연구 특별지원 과제라나 해서 임시 연구 기금을 만들었다. 과제당 최대 지원 액수는 1억이었다. 당시만 해도 태평양 연구소 정부과제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었고, 정부 과제 한다고 해야 대학에서 교수들이 올리는 과제에 참여기업으로 들러리 서서 지원하느 것이 대부분이었지, 실제 돈 타먹은 경우는 없었다고 봐야한다. 대학원때 과제에 울고, 과제에 웃은 빼꼼이 기질이 있는지라, 선배 소장님께 말씀드려 과제 신청했고, 심사 당일 발표하러 갔더니 과학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양** 교수님이 가운데 턱 앉아 계시더라. 화공과 소속이신데, 이분 특이하셔서 경기고, 서울대 출신에다가 집이 엄청 부자란다. 그만큼 남의 눈치 같은거 보시는 분이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 많은데 발표전 내 안부를 묻지 않나, 발표 말미에 “내 저 친구 잘 아는데, 허튼 소리 할 친구 아닙니다. 박사학위과정중 해외 저널에 논문도 열편 가깝게 내고”. 과제 발표에 심사위원은 사실상 무찔러야 할 적이라고 봐야 하는데, 적진 한가운데 장수가 우리편인 셈이었다. 결과는? 바로 됐지 모. (그래서 사람은 죄짓고 못살고, 몸짱, 얼짱보다 운짱이 최고라는 거다).

어쨋든 발표의 그날은 다가왔고, 예의 “순수한 비타민C 는 노랗지 않습니다” 를 키워드로 하여 갖은 발표의 기교를 다 부려가며 마쳤다. 예상했던 대로 사장님 이하 마케팅 관심 뜨거웠다. 당연 전략과제로 선정되었고, 나중에 듣기로는 1등 아니면 2등으로 선정되었다고 하더라.

오늘 역시 얘기가 길어지는 관계로 이쯤에서 끝을 맺고, 다음편에서 이 DSC 과제 어떻게 말아 먹었는지 잔잔하게 읊도록 하겠다. 혹시 DSC 과제 관련 기술적인 부분에 관심 있는 분은 아래 링크 꾹 누르기 바란다. 정부과제 보고서라 제출한 것이라 이미 일반에 공개되었기 때문에 여기 올려도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DSC 과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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