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 (4)

전편에서 비타민C 안정화를 목적으로 DSC 프로젝트팀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또 어떻게 take off 했는지 주저리 주저리 읊었으니 이 연재 새로 보시는 분은 전편 (http://blog.leenjay.com/2012/05/17/chronicle-3-27-2/) 참조하시기 바란다.

환호와 기대속에 기술전략회의 발표 잘 마치고, 몇일간은 뭐랄까 영웅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97년 발매 이래 성장이 정체되어가고 있는 레티놀2500 에 대한 구세주랄까 뭐 그런 느낌에다가, 그 전까지는 이런 과제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관심도 없었던 화장품 연구소에서 러브콜이 쇄도 하는 등등 (그때는 그렇다. 같은 태평양 연구소라도 화장품 연구소에서 제품 담당하는 연구원은 진골, 기타 안전성등 제품과 직접 관계되는 지원부서 연구원은 성골, 그리고 우리 같이 원료 개발하는 연구원은 육두품이라고 했다. 기타 분야 연구원은? 용병이었지 뭐).

그러는 와중에 프로젝트의 사활을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하나 발생했는데……

45oC 1개월에서도 끄떡없었던 바로 그 노벨 제형이 이번에는 노르스름한 빛을 보이는 것이다. OMG

앞서 글에서 밝혔듯이  실험이 재현성 측면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기에, 기술전략회의에 발표하는 것, 개인적으로 꺼렸었는데, 존경하옵는 대학 선배 소장님께서 안되면 같이 죽자는 말씀에 힘을 얻어 그나마 조용히 발표하는 것으로 넘어간 것도 아니고 “순수한 비타민C 는 노랗지 않다고”, 사진까지 넣어가면 온갖 기교를 다 부려 발표해 버렸는데 말이다. 깜놀하여 안전성을 점검해 보니 지난번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decay 반응의 kinetics 는 dC/dt = k*C^n 의 형태이므로 분해속도는 농도에 영향을 받는다. 두번째 확인 실험에서는 비타민C 초기 농도를 1% 대신 3.5% 로 올렸는데, 이는 비교제품인 랑콤의 비타볼릭이 3.5% 였기 때문이다 (지난글에 비타볼릭 비타민C 함량에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 45oC 1개월 보관 후 잔여농도는 초기농도의 약 98% 정도로 농도의존도를 감안할때 1% 때와 비교 재현성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는데, 문제는 색깔이었다. 문제의 그 색깔.

비타민C 가 시간이 지나면서 노란색을 보이다 점점 진한 황갈색으로 가는 것은 1차적으로 가수분해를 통해 ring 구조가 깨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이것이 추가적인 가수분해 반응을 통해 깨지면서 급기야는 갈색화 반응 (마이얄 반응) 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최소한 이 색깔에 있어서는 초기농도 대비 보존안정도와 상관 없이, 색깔을 내는 분해중간물의 농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초기농도가 5% 일때와 1%일때를 비교해보면, 같은 조건에서 1개월 보관시 똑같이 안정도가 99% 라고 가정하면, 초기농도 1% 인 경우 분해산물의 농도가 0.01% 이고, 5%인 경우에는 0.05%가 된다. 분해산물의 농도가 0.01% 의 경우는 육안으로 노란빛이 잘 안 보일 수 있지만, 0.05% 가 되면 비로소 그 노란색이 눈에 띠는 것이다. (상식에 속하는 얘기인데, 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미리 생각을 못했다). 그저 안정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정도로 발표했으면 그래도 어떻게 해결이 되었을텐데, “순수한 비타민C  는 노랗지 않습니다” (돌려 말하면 “순수한 비타민C 는 순수한 흰색입니다”의 의미) 이렇게 질러 버렸으니, 어떻게 하던 이 색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다른 색으로 마스킹할 수도 없고 당췌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화장품연구소에서는 사용감 최적화 해야 하니, 원료의 기본처방 샘플로 빨리 넘겨달라고 독촉하고, 변색을 완전히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사실상 아티팩트였다고 인정하자니, 선배 소장님 말씀대로 같이 죽어야 할 처지이고. 이런 문제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저런 문제가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이렇게 시간 끄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당시 연구소 조직 중 연구경영실만은 실험을 하지 않았는데, 복도에서 연경실 사람을 보게 되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아 최소한 저 친구들은 나처럼 이런 고민 않고 살겠구나).

DSC 의 또 하나 개선사항은 수용성인 비타민C 의 경피흡수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는 점인데, 활성물질의 경피흡수 역시 여러가지 factor 에 영향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분자량, 수용성등이 key fator 였다. DSC 가 왜 경피흡수도를 개선시켰는지 이론적으로 확실히 밝히지는 못 했으나, 앞 글에서 첨부한 보고서에 쓴 바와 같이 양극성 담체에 비타민C 가 포집됨으로써, 지용성인 피부각질층과 원료의 분배계수가 변화하지 않았을까 추측은 하고 있다. (나중에 이 경피흡수 결과를 바탕으로 지금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중인 신*석님 주도로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어쨋든 안정화 (최소한 변색에 있어서는) 측면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기에 조금이라도 이 상황을 역전시켜보고자 외부에다는 안정화 얘기는 접고 경피흡수 개선쪽으로만 떠들기 시작했다.

정치인과 연구원의 공통점은 거짓말이 들통나면 옷 벗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변색되지 않는 순수한 흰색의 비타민C 제품을 원하는데 꼼수 부려 경피흡수쪽으로 관심을 유도하려 해봤자, 사람들이 모두 내 뜻대로 아 그렇구나, 경피흡수 증진만 해도 큰일이지 절대 그렇게 움직이지 않더라. 원료 이관이 늦어지면서, 저거 뻥 아냐란 수근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화장품 연구소 모 팀장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직접 묻기까지 하시더라. 차라리 그때 솔직하게 안정화에 개선은 있었지만, 변색을 100% 막는것은 사실상 제 아티팩트였던 것 같습니다 라고 솔직히 고백했으면 좋았을텐데, 그 놈의 가오가 뭔지….”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제형상 약간 기술적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해결 가능합니다” 가 완전히 뻥쟁이 연구원 이장영 포지셔닝을 굳혀 버리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99년 봄 당시 떠오르는 코리아나에서 오렌지색 엔시아란 제품명으로 비타민C 제품을 출시했는데, 화장품 역사상 발매 초기 매출 신기록을 경신했다나 언론에서도 떠들썩 했다. 본사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거냐, 그때 발표한 비타민C 안정화는 어떻게 되어가냐. (결국 이번달 15일, 15년이나 지나서 회사를 떠나기로 했지만, 당시 정말 심각하게 회사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기대를 모았던 DCS 프로젝트는 아티팩트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발표하여 기대치와 성과치와의 차이, 진실성에 대한 주위의 의심, 경쟁사의 선출시란 트리플 블로우로 결국 시름시름 시들어 갔다. 그 결과 남은 것은 뻥쟁이 이장영, 발표만 화려한 이장영이란 포지셔닝. 내 자존심 상 더 이상 연구원 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러한 상황과  회사의 변화가 합쳐져 연구원 생활을 접고 2000년 본사로 근무지를 옮기게 된다.

오늘도 얘기가 주저리 주저리 길어진다. 오늘 연재는 이 정도로 끝나고, 다음은 본사로 옮기게 되는 회사의 상황 변화에 대해 읆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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