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ife

환송회

일정에 쫓겨 퇴사하느라 지난 1년반 동거동락했던 팀원들과는 어제야 겨우 환송회를 했습니다. 현재 팀원들뿐 아니라 과거에 같이 일했던 친구들, 그리고 멀리 AP 연구소에서도 찾아와 자리 빛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지난 15년 회사생활 아주 잘 못 한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어제 감사말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상황에 따라 다른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만해도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외아들에 맏사위등등. 거기에 더하여 이런 관계에서 자유로운 내 자신의 모습 또한 내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타인을 대할때 자기가 보는 모습은 그 사람 전체 모습의 10% 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7년 연애하고 19년 결혼생활을 함께 해 온 내 집사람만 해도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직장에서 집사람의 모습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보는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일부분만 보고 다른 사람 전체를 판단해 버리곤 합니다.  마케팅 상무라는 직책까지 승진했었고, 미래 태평양제약의 사장 후보 (뭐 나 혼자 착각일 수도 있지만) 로도 종종 언급되었던 사람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을 보고, 회사에 얼마나 비젼이 없었으면 혹은 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직 같은 개인적으로 중요한 결정은 여러분들이 보지 못하는 여러가지 제 개인적인 상황들이 다 합쳐져 만들어지는 것이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회사의 비젼이나 업무의 어려움은 결정하는 데 있어 오히려 마이너 요소일 수도 있습니다.

이직하겠다고 와이프에게 얘기하고 나니, 조심스럽게 묻습디다. “혹시 토요일 임원포럼 가기 싫어서 그만 두는 거야?” 왜냐하면 회사 생활하면서 종종 농반진반으로 그랬거든요. “나 만약 회사 그만두면 이놈의 임원조찬회하고 임원포럼 때문에 그런 줄 알아”. 설마 한달에 한번씩 있는 조찬회나 포럼때문에 그만두지야 않았겠지만, 또 모르죠, 결정하는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조금은 작용했을지도요.

개인간뿐 아니라 조직도 같지 않을까요? R&D 가 바라보는 마케팅, 또 마케팅이 바라보는 R&D, 영업에서 바라보는 내근부서, 반대로 내근부서가 바라보는 영업. 자기한테 보이는 것 외에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는 것 조금씩만 이해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발전된 열린조직, 열린소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지난 1년반 메디컬뷰티, 지난 5년 태평양제약. 그리고 모두 합쳐 지난 15년 아모레퍼시픽 울타리에서 함께 즐겁게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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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reshing

뭐랄까 점심시간 이후 약간의 리프레싱이 필요해서..

첫번째는 Tony Monaco 의 “Oh Marie” 도입부 마치 마피아들 파티 연상시키는 이탤리언 액센트 팍팍 풍기는 영어로 딱 마피아에 어울리는 이름 Tony (제대로 발음하려면 토니가 아니라 또니라고 해야 한다). Hammond B3 연주를 들으면 펜의 느낌이 나는 피아노와는 달리 붓에 물감 잔뜩 묻혀 디립다 칠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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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픔 글고픔

싱가폴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후배가 간만에 한국 왔다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서 책 몇권 구입하고 싶다해서 추천하면서 든 옛 생각.

95년 학위 마치고 미국으로 포닥하러 갈 때 일이다. 홀몸으로 가는 거라 그닥 짐이 많진 않았지만, 대부분이 전공서적이어서 무게는 꽤 많이 나갔다. 중량 초과 되지 않으려 엄선한 책이었음에도 결국 중량 초과로 extra charge 물었으니 한글 소설이나 만화책 같은 것은 꿈도 못 꾸었다. 한국 흔적이라곤 김건모 CD 몇개 챙긴 것이 전부? 미국에 막 도착해서야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거기다 주변에 한국 사람은 없고 미국 친구는 잘 안 생기고) 심심해서 미칠 지경이더라.

특히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욕구가 절실하던데, 지금처럼 카톡이 있던 시절도 아니요, 스카이프 같은건 상상도 안 되고, 기껏해야 넷스케입으로 웹 접속하는게 고작인데, 당시만 해도 한글로 제대로 된 인터넷 사이트 드물었다. 언론사 인터넷 신문도 막 도입 단계였고, 실시간 방송 시청? 꿈도 꾸기 힘든 시절이었다.

어쩌다 한인 교회와 연락이 되었고, 한국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동네에 그래도 세탁소, 편의점, 식당 등등 하시며 사시는 한국분들 대략 30명쯤 되더라. 주일 예배나 수요일 구역예배가 끝나면 대개는 한식으로 식사를 같이 하기에, 나같은 사람한테는 구원이나 다름 없었다. (내 마흔 다섯 인생 중 주님과 가장 가까왔던 시절이었던 듯)

어쨋든 첫 구역 예배에서 모 장로님이 한글 성경을 선물하셨는데, 그것이 한참동안 우리집에 있던 유일한 한글책이었다. 내 평생 다시 또 그럴일이 있을까도 싶지만, 비교적 익숙한 신약은 물론 구약의 출애굽, 레위기등등에 시편, 잠언등 외경까지. 불타는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쨋든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세번이나. 내겐 매우 유익한 기회였다. (미국 한인교회에서 세례까지 받았지만, 지금은 다시 속세에 젖어 교회 마지막으로 나간지가 언젠지 감감하다. 주님이야 매일밤 함께 하지만..)

결핍은 수요를 낳고 강력한 수요는 불타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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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use and Effect

2001년 3월에 입학해서 2003년 8월에 졸업했으니 2년반 경영학 공부를 한 셈이다. Ph.D 마친 상태로 회사 입사한 놈이 뭔 학위가 부족해서 경영대학원까지 했느냐. 2년반 동안 관찰해 보니 당시 (지금은 대부분 경영대학원 학사관리가 매우 빡세졌다니 아닐 수 있겠지만) 경영대학원 학생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겠더라.

1) 석사학위가 필요하다

2) 경영학에 대한 체계적 지식이 필요하다

3) OO대학이라는 간판이 필요하다.

내 경우 2)번에 속했다고 해야겠다. (그렇다고 그 2년반 디리 공부만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생각해보니 주경야독 낮에는 회사일, 밤에는 공부하다 보니 출석률만 따지면 결석이 출석보다 더 많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런 것은 아니고, 아마도 2학기때가 아닌가 싶은데, 모 기금교수로 젊은 교수님이 인사/조직쪽으로 새로 학교에 부임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LSE (London School of Economics) 에서 학위하시고 유럽의 모 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하시다 연대로 오신 것으로 안다. Part time 경영대학원에 대해 생소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소위 학삐리 분위기가 풍풍 풍기는 매우 겸손한 교수님으로 기억한다.

첫시간부터 여기 이렇게 경험이 많으신 선생님들을 모시고 제가 가르칠 것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제가 현장경험이 없어 주로 이론쪽으로만 강의하니 양해 바랍니다 식으로 얘기하니, 1)번 3)번 유형이 대부분인 중장년 형님들께서 이 교수님은 아예 깔애뭉게는 분위기였다. (나이도 어린 교수님이라 이런 분위기에 변변히 항의도 잘 못하셨다). 이 형님들 나한테도 ” 이박사 인사라는게 말이지 현장에서 구르면서 배우는거지, 이 따위 것 별로 필요 없어”.

지금도 현업에 있는 놈이 교과서 가지고 신선놀음 한다는 소리 종종 듣지만, 그 당시는 그런 경향이 더 심했는데, 사실 투자론이나 경제학, 마케팅은 최소한 이론적 베이스가 탄탄하거나 경험적 케이스라도 많았지, 인사/조직이라는 것 어찌보면 상식에 속하는 얘기들을 계속 해대니, 이런 과목은 시험공부 안해도 대략 썰만 풀어도 최소 B+은 거뜬하겠다 생각이 들었고, 2년반 재학기간동안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 (근데 정말 썰만 풀어도 학점 잘 나오더라. 착하신 교수님들 덕이었을까?)

10년이 더 지난 지금, 밑에 근 25명을 데리고 일하는 사업부 임원까지 승진 했지만, 요즘처럼 인사가 만사다 뼈저리게 느끼는 적이 없다. 결국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처럼, 기회가 있었음에도 깡그리 무시하고 다니다 보니 이제 그 벌을 받는 것 아닌가 싶다.

임원은 직원과는 다른 별종인 것 같지만, 흔히들 임직원이라고 싸잡아 부른다. 회사라는 것이 옛날로 치면 모 상단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상단내에서야 행수어른이 하늘인 것 같겠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행수어른, 그리 멋있더나? 결국 머슴살이 하는 것은 똑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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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 yourself

임원이 된지 이제 만 3년반 접어들지만, 아직도 상당 부분 자잘한 (?) 업무 내가 직접 하는 것 꽤 있다. 예를 들어 발표자료 만든다거나, 해외로 나가는 비지니스 레터 내가 직접 쓴다거나등이다. 극단적이긴 해도 내가 부르짖어 시작한 브랜드 홈페이지 제작도 내가 했고, 컨텐츠도 아직까지는 대부분 내가 만들어 채운다.

Delegation 을 못하는 소심한 상사라기보다, 일부는 내가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때문이기도 하고 또 일부는 부하직원들에게 미루기 미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때로 어떤분은 (일부 부하직원들 포함하여) 임원쯤 되어서 똥오줌 못 가린다, 좀 더 중요한 데 시간을 더 배분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충고도 하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불과 십 몇년전만 해도 타이핑은 타이피스트 혹은 아랫사람이 하는 거였고, 이메일은 당연히 아랫 사람이 보고 정리하여 프린터로 뽑아 상사께 대령하는 거였다. 당시에 그런 일 직접 하는 임원 아마 비슷하게 점잖게 나잇값 좀 하란 소리 들었을 것이다.

요즘 회사에 스마트워킹 얘기 많이 도는데, 알고보면 현장출퇴근, 자율출퇴근 시간, 샌드위치 휴일 맨 그런 일이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 중요하니 뭐라 그럴 일은 아니지만, 임원이 직접 데이타 보고, 중요한 코레스 챙기고, 보고서 오기전에 현장 챙기면, 이로 인한 생산성 증가로 하지 말래도 자연히 이런 것들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일은 하나도 줄이지 않으면서 강제로 야근 없애고 휴일 늘리면 뭔 용빼는 재주 있어서 그 일들 다 해낼까 싶다. 생산성은 담당들만의 몫인가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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