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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하면 통한다?

금요일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를 보니 결정은 크게 다음의 3단계로 이루어 진 듯 한다.  (선고문 그리고 발표내용을 꼼꼼히 볼 필요도 없었다. 선고가 끝나니 종편을 위시한 모든 방송의 뉴스가 분석하고 또 분석해서 반복의 반복을 거듭하며 알려주더라).

  1.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혹은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의무를 객관적으로 준수했는지;
  2. 위반의 정도 혹은 의무의 소홀 여부가 파면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했는지;
  3. 마지막으로 탄핵을 인용했을때 (대통령직 파면) 와 기각했을때 (대통령직 복귀) 의 효용의 비교.

 

비지니스에 있어 협력제안의 평가도 비숫한 단계를 거친다.

  1. 제안이 합리적이고, 제안대로 할 경우 사업타당성이 충분한지;
  2. 제안 내용이 양자에 공평하고 상호 이익을 도모하고 있는지;
  3. 마지막으로 제안을 수용했을때와 기각했을때 효용의 비교.

 

한가지 덧붙이자면, 결과는 원인과 과정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다. 탄핵심판 선고문 후반에 “피청구인은 국회와 언론의 감시를 무시하고 방해하였으며, 검찰과 특검의 조사를 회피하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등 헌법수호의 의지를 보이지 않은 바, 직을 유지하는 경우 개정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라 명시하였다. 마찬가지로 비지니스 협력에도 경쟁자 대비 역량이 열등하고 자금이 부족하다 해도, 협상과정중 투명한 자세와 협력에 대한 열정으로 이를 뒤집는 경우도 많다.

국가의 중대사와 시정의 사업행위를 head to head 로 비교하는 것 무례할지 모르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결국 궁하면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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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한참 전 어디선가에서 읽었던 이야기. 해방 전후 정부수립 과정에서 모 인사가 서울시장과 초대국회의원 출마 모두를 제안 받았단다. 국회의원 출마로 마음을 굳힌 이 분이 집안 어르신께 이야기 드렸더니 그 어르신 팔팔 뛰었더란단다. 서울시장이면 족보에 한성판윤이라 벼슬을 쓸 수 있는데 국회의원이면 족보에 뭐라 쓰냐고.

전 직장에서는 호칭에 직위를 못 붙이게 하는게 규칙이었다. 당시 직급이 본부장 상무였지만 회사내 공식 명칭은 이장영님. 처음 제도가 도입되었을땐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일부 사업부나 계열사는 끝까지 수용 거부하기도 했지만,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를 보았을 때 이러한 호칭은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대부분은 직급을 같이 붙인다. 명함이 중요한 것도 굳이 연락처가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직급을 알기 위함이다. 직급을 모르면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애매하니까. 그래서 난 사람들이 전무님라고 불러 주는 것보다 박사님이라 불러주는 것이 더 좋다. 전무야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임시직급이지만, 박사야 한번 학위 취득했으면 평생 따라가는 것이니. 회사 그만두고 더이상 전무도 아니면서 전무님 소리 들으면 무척 어색할 듯 싶다.

호칭

글제목을 평가라고 달아 놓고 호칭 얘기를 한참 늘어놓은 이유는 많은 경우 우리의 평가 잣대라는게 호칭과 무척 연관이 깊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인 학벌만 해도 결국은 수능과 내신에 의해 결정된다. 수능과 내신은 또 뭔가? 몇몇 출제위원이 선택한 문제와 답이다. 물론 수능을 관리하는 국가가 엄선한 출제위원이기는 하지만, 도대체 그들이 뭐간디 내가 그들이 선택하고 고른 답을 얼마나 맞히느냐에 따라 평가되어야 할까? 수능은 워낙 많은 사람이 보는 시험이니 관리상 그렇다고 치자. 조직내 승진도 그렇다. 몇몇 인사위원들 혹은 힘센 윗분 한사람의 결정이다. 그들이 뭐간디 내 인격과 실력이 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나? 신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실리는 대학평가, 살기 좋은 나라 평가, 혁신형 제약기업 평가. 이런 평가들 세자면 한도 끝도 없다.

모든 일은 plan do see 의 세단계를 거쳐야 하고 각각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단다. 여기서 see 가 평가에 해당하는데 측정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평가 역시 일의 한부분으로 성과를 개선하는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평가는 성과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일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이지, 평가가 절대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를 옥조이는 족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 버린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인간으로서 나를 전체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특정한 시간 특정한 측면에 대해 특정한 기준으로 나에 대한 점수를 특정 기한에 한정하여 메길 수 있을 뿐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수백개 수천개 기준에 대한 평가가 누적되었을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평가

요즘 전교 일등하는 형 기세에 눌려 작은놈 스트레스가 장난 아닌 것 같다. 학교 성적이라는 것 사람을 평가하는 수백 수천가지 기준중 하나일 뿐인데, 온 나라 학부형 그리고 학생들이 그 기준에 매달려 웃고 울고. 30년 나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삼백년전에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앞으로 삼백년 후에도 이러지 않을까 셒다. 좀 건방져 보일지 몰라도 세상에 감히 어떤놈이 날 평가해? 하는 생각으로 산다면 언젠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아침에 둘째한테 이 얘기 해주다 마눌께서 똑같은 인간들이 자알들 놀고 있다며 쫑코 주시더라..)

행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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