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 (2)

앞글 (http://blog.leenjay.com/2012/05/15/chronicle-1/) 에서 얘기했듯이 첫번째 프로젝트는 입사후 6개월만에 그렇게 날아가 버리고, 병특이 아직 남아 있어 좀 막막하더라. 물론, 당시 과학원 졸업자는 병특 티오를 자기가 들고 다녔기 때문에 병특으로 지정되어 있는 업체이기만 하면 티오에 관계 없이 옮길 수는 있었지만, 6개월만에 다른 회사로 옮기기도 좀 그랬고, 당시 IMF 금융위기로 대부분 회사 사람 자르느라 정신 없는데, 사실 옮길만한 회사도 별로 없었다.

2. 응용피부과학연구소 기획

기술기획팀장으로 본사 근무하시다, 97년 당시 연구경영실장으로 다시 연구소로 복귀하신 대학선배 한분이 계셨는데, 사내 게시판에 올렸던 분석기기 로그북 활용에 대한 내 제안을 보시고 나름 나를 귀엽게(?) 생각하셨다. IMF 를 맞아 바이오팀만 날린 것이 아니라, 연구소 전반적인 조직개편이 있었는데, 복잡하게 흩어져 있는 소단위 조직을 통일하여, 크게 응용피부과학연구소, 화장품/생활용품연구소, 의약건강연구소 세개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그 선배님이 응용피부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취임하셨다. 그 분 말씀이 “새로이 조직된 연구소인만큼 미션과 비젼이 명확해야 하고, 이를 위해 기획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니가 와서 이 일을 맡아보지 않겠느냐? “. 당시 연구소내 딱히 갈 곳도 없었고, 바이오팀 깨지면서 실험이라면 지긋지긋했던 기억도 있어, 그 분 말씀대로  신생연구소 기획일을 맡아서 했고, 3개월 가량 정말 피똥싸게 고생해서 98년 4월 “응용피부과학연구소 연구전략”이라는 약 20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작성했다. 같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외비 정보가 일부 포함되어 있는 관계로 공개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한가지 자평 (혹은 자뻑) 하자면, 30이 갓 넘은 평범한 박사 연구원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비범한 분석과 대담한 제안, 칼날같은 인싸이트 등등 지금 와 가끔 펼쳐보아도 손색이 없는 기획보고서란 점이다. 당시 이 자료를 들고 소장님께서 그룹 사장님 앞에 보고 드렸는데, 어지간히 칭찬을 들으셨는지, 그 달 말인가 그 분기 말에 10만원인가 시상금을 지급하시기도 했다. 그 당시 그룹 사장님께 작성자가 나라고 얘기를 하셨는지 어쨋는지는 몰라도 그 보고서가 이후 본사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일부 역활을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그리고 십수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벗어나 Asian Beauty Creator 를 꿈꾸는 대 아모레퍼시픽 연구소의 기본적인 연구 방향이 그 보고서 제안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본인 스스로 감탄하고 있다.

3. 수용성 원료 (비타민C) 안정화 프로젝트

대학 같은 과 후배 중에 울 와이프와 이름이 같은 여자 후배가 태평양연구소에 같이 근무하고 있었다. 상당히 개성 있는 친구라 가끔씩 동문회 2차로 신갈 바닥 단란주점에 가도 자기도 여자 불러달라고 하고 술도 세고 하여 종종 같이 술자리도 하고 했었다. (이 친구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이후 와튼스쿨로 유학 갔는데, 유학 마치고 돌아와 잘 나가고 있다는 소실 전해 들었다).  어느날 이 친구와 술자리를 같이 했는데, 술이 좀 취한 탓도 있지만, 이 친구 왈 “오빠는 과학원에서 박사까지 하고 왜 지금 그딴 일을 하고 계세요? 좀 창피하지 않아요?”. 그 딴 일, 창 피 하 지 않 아 요. 머리를 한대 텅 두드려 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석사 2년, 박사 3년반 죽어라고 공부하고 전공과 하등 상관도 없는 그 딴 일. 뭔가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한 가득이었다.

당시 연구소는 조직개편만 한 것이 아니라, 연구생산성 향상을 위해 A*L 이란 글로벌 컨설팅 사를 고용해 전체적인 프로세스 재정립중이었는데, 결과로 나온 것이 매트릭스 조직이다. 매트릭스 조직은 wiki 찾으면 나오니 검색해 보시고, 중요한 것은 기존의 팀제 조직을 씨줄로 세우고, 거기에 날줄로 프로젝트 조직을 겹쳐 만드는 것이다. 팀 조직은 항시적인 조직이요, 프로젝트 조직은 임시적인 조직이나, 원칙적으로 팀장과 PL 의 권한은 같았다. 요지는 젊은 친구들을 PL 로서 전면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 당시 보고서 보관하고 있는데, 나중에 경영대학원 다니며 공부해 보니 그야말로 경영학중 인사/조직 관련 교과서 그대로 베껴쓴 거더라. 당시 수억을 들인 컨설팅이었는데, A*L 좀 너무 하긴 했더라). 기회는 찬스요 아까 그 선배 소장님 찾아가, 더이상 기획일은 못하겠다, 다시 실험실로 보내주지 않으면 회사 그만 두겠다 생떼를 썼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아까 예의 그 보고서에 나온 대로, 당시까지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화장품의 all time favoite 비타민 C 를 안정화 하겠다는 프로젝트. 그래서 결성된 팀이 DSC 였다. (Delivery and Stabilization of vitamin C 의 acronym 이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오늘 연재는 여기서 끝내고, DSC 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다음 연재에 이어서 다시 얘기하겠다. 아까 그 보고서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실패로 인해 결국 2000년부터 연구소를 떠나 본사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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