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 (1)

만 15년. 30대 전부와 40대 반을 보낸 회사와 오늘자로 이별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회,노,애,락 , 그리고 이 네가지 범주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다. ‘그까이것’ 하고 쿨하게 떠나는 것도 간지나겠지만, 천성이 바지가랑이 잡고 늘어지는 쪽이라 그 15년동안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 연대기 형식으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의미가 없다면 재미라도). 길어질 것 같으니 생각 나는대로 토막내어 하나씩, 혹은 두개씩 연재해 보자.

1. 아스타잔틴 프로젝트 :

97년 미국에서 포닥 마치고 한국에 들어올때만 해도 회사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갓 서른 이미 열편이상의 논문을 낸 상황이었기에 학교에 자리 잡는 것 껌 정도로 생각했다. 현실은 냉정했고, 열달 가까운 반백수 생활끝에 이름도 생소했던 주식회사 태평양이란 화장품 회사에 안착했다. 첫번째 맡은 프로젝트가 ‘Phaffia rhodozyma 란 효모를 통해 astaxanthin 이란 천연색소 생산효율 개선’. 아스타산틴인 베타카로틴계 천연색소로서 연어나 송어살이 붉은색을 나타내는 바로 그 색소이다. 자연산은 해양에서 아스타산틴 생산하는 플랑크톤을 잡아 먹어 붉은색이 나지만, 양식의 경우는 별도로 사료에 이 색소를 첨가하지 않으면 연어고 송어고 살이 광어처럼 허옇다. 화장품 회사가 갑자기 웬 연어사료냐 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랬다. 연어양식 대국은 유럽의 노르웨이인데, 아스타산틴 시장을 로슈라는 스위스 회사가 독점하고 있어, 노르웨이 연어산업 수익성이 로슈의 가격정책에 따라 흔들린다고 하더라, 그래서 노르웨이의 경우 대체수입처를 간절히 찾고 있었고, 이를 노리고 시작한 과제다.

입사 무렵, 연구팀에서는 러시아의 모 연구소와 협력을 통해 러시아에서 스크리닝한 wild type 효모에 random mutation 을 통해 cell mass 대비 색소함량을 2400 ppm 까지 증가시킨 상태인데, 경제성 평가를 해 보니 최소한 4500 ppm 은 넘어야 한단다. 이 말만 믿고 배양해 보았더니, 2400ppm 은 커녕 1000ppm 도 안 나오더라. 배양조건을 최적화 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어쨋든 이 조건 잡느라 개고생 했다. 안정적으로 2000ppm 언저리까지는 나오도록 조건은 잡았는데, 문제는 4000ppm 대로 올리는 2단계 퀀텀점프.

아스타잔틴의 생합성 경로를 분석해 보니 lipid 합성경로에서 branch 가 있더라, 브랜치 기점에 있던 중간체가 뭔지는 잘 생각이 안 나는데, 그 기점으로부터 생체요구도에 따라 ergosterol 이란 스테롤 계통 합성경로로 갈 수도 있고, astaxanthin 으로 갈 수도 있다. 오호라 내 전공이 대사공학인데, 이거 재미있구만. Ergosterol 쪽으로 가는 경로에 자리잡고 있는 중간체중에 시약으로 구입이 가능한게 뭐 있나 보았더니, 스쿠알렌 (squalene) 이 눈에 띠었다. 스쿠알렌, 시약으로는 비싸지만, 건식 원료로 많이 쓰이는 것이라 벌크로 구입도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가정) 효모 배양시 스쿠알렌을 첨가해 주면, 과연 이 스쿠알렌이 feedback inhibition 을 유도해, 경로 branch 에서 carbon flow 를 ergosterol 쪽이 아닌 astaxanthin 으로 몰 것이다.

(결과) 삼각플라스크 배양결과 니미뽕이더라. 오히려 색소함량이 낮아지더라.

에라이하고 던지려는데, 당시 내 유일한 입사동기였던 이모 연구원 말씀, “이선임님 (그랬다 당시 나는 이선임이었다), 거 참 이상합니데이. 내 누시깔로는 이선임님 배양한 게 훨씬 버얼게 보이는데, 와 함량이 낮을까예?” 으흠, 그러고보니 내 눈에도 스쿠알렌 첨가한 것이 훨씬 벌게 보이더라.

몇번을 더 실험해 봐도 색소함량 증가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아 97.2% 는 거의 포기 상태로 갔는데, 이상한 것이 배양이 끝나고 cell mass 만 얻으려 센도리 (centifuge 의 전문용어) 를 돌리고 나면, 스쿠알렌을 첨가않은 배양액에서는 깔끔하고 빨간 pellet 과 supernatant (전문용어로는 국물이라고 한다) 가 분리 되는데, 스쿠알렌을 첨가하면 이거이 이상하게 흐리멍텅하게 분리가 잘 안 되는 것이다.

Ergosterol 은 효모에 있어 세포벽을 구성하는 성분이다. 생리적인 기능보다는 구조적인 기능이 주라 ergosterol 이 없으면 세포벽의 integrity 가 약해진다는 옛날 과학원 입시 준비때 읽었던 microbial world 의 한구절이 생각났다. 오호라 만일 스쿠알렌 첨가로 인해 ergosterol 합성이 줄고, 이로 인해 세포벽이 약해져 색소가 배양액으로 일부 샌 것이라면, 실제 세포내에서 색소 생산은 스쿠알렌 첨가로 인해 증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옮기기는 내용이 길어 생략하지만, 몇가지 trick 을 써서 cell mass 대비 색소함량을 측정했더니 무려 12,000 ppm. 빙고, 유레카! 당시 팀장님께서 아까 얘기한 러시아 연구소에 출장중이셨고, 이 기쁜 소식 알리기는 해야겠는데, 혹시 러시아 연구소에 이 발견이 노출될까봐 한글로 문서 작성하여 팩스로 보냈다 (당시는 그랬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함께 일했던 이성구, 박경목, 박병화, 김무성님 등등해서 신갈 바닥에서 코가 삐뚤어지게 한잔하고 외박했다가 집에서 이혼당할 뻔 했던 기억도 난다.

스쿠알렌 첨가를 통한 잇점은 단순히 색소함량 증가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스타잔틴은 생산 후 세포질속에 단단히 박혀 있을 뿐 아니라, 물에 대한 용해도가 낮기 때문에 사료에 섞어 연어나 송어가 섭취한다고 해도 흡수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위 permeation 이란 단계를 거치는데, 미세 bead 와 cell mass 를 섞어 강하게 교반하면 세포가 너덜너덜해진다. 문제는 실험실에서 소규모로 하는 경우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대규모 공정에서는 기계적으로 permeation 하기가 쉽지 않다 (비용이 많이 든다). 스쿠알렌을 첨가하면 세포벽 자체가 이런 permeation 과정 없어도 너덜대기 때문에 permeation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것이다.

이후 세포벽의 integrity 와 색소생산간의 상관관계를 최적화 하여 마지막으로 얻은 수율은 약 8500 ppm. 최초의 12,000 ppm 에 비해서는 다소 낮아졌지만, 이만 해도 세계 최고의 수준이고, 대규모 생산시 경제성도 충분했다. (다만 이놈의 Phaffia rhodozyma 란 놈이 최적성장온도가 22oC 인 관계로 배양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carbon utility efficiency 가 좋지 않아 최고 cell 농도가 E. coli 등에 비해 많이 낮다. 이것도 개선하고자 했지만, 못했는데 이유는 아래 참조하시라).

팀장님께서 노르웨이의 재벌기업은 Hydra 란 회사와 접촉을 시작하셨고, 얘기가 잘 흘러가 현지 due diligence 이후 turn key 로 기술수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팀장님께서 나하고 이성구는 기술이전 할 경우 노르웨이에 파견되어 공정 최적화 작업을 해야 할 것이고 몇년은 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 노르웨이가 어떤 나란지 no idea 였지만, 입사하자마자 해외근무 얘기가 나오니 괜히 으쓱하더라.

97년은 IMF 의 해다.  깡드쉬 총재가 한국에 오고, 결국 나라가 깡통을 차게 되었단다. 회사는 이미 구조조정을 선제적으로 마친 상태라, IMF 영향이 거의 없다기에 12월 어느날 멀쩡하게 출근했는데, 바이오팀이 없어졌단다. 그리고 바이오관련 사업 접는단다. 선택과 집중이라나. 처음엔 에이 설마 했지만, 팀장님이 부르시고 열중쉬어 자세에서 얘기 쭉 듣고 나니 실감이 나더라. 과제는 여기서 접고, Hydra 에서 계속 관심이 있으면 이 상태에서 기술이전 하고, 아니면 끝이란다. “에이 씨발” 이란 말은 여기서 쓰는 말 같더라. 스케일업이 전무한 상태에서 기술이전이 될 리가 없고, 예상한대로 현실에서도 Hydra 는 No 란다. 키우고 있는 발효조에 유한락스 들이 붓고 병특 끝나고 이 회사 계속 남아 있으면 성을 간다고 했던 것 기억난다.

내 첫 프로젝트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몇년이 지난 후 국내 모기업에 균주와 프로세스 이전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당시 팀 깨지고 사업 접는다는 얘기에 다들 실망이 컸던지, 균주 보관에 소홀 동결건조 보관해 놓았던 놈이 나중에 다시 리바이벌 하니 2400 ppm 은 커녕 800 ppm 도 제대로 안 나오더라. (mutant 같은 경우 보관이 소홀하면 이렇게 revertant 가 dominant 해지는 경우 왕왕 있다).

이것으로 첫번째 연재 끝. 앞으로 한달은 시간도 많으니 하루에 한개 혹은 두개 토막으로 계속 연재하고자 한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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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익명 2014년 2월 24일 at 2:17 오후

    좋은글 감사합니다.
    우연히 아스타잔틴 (검색하다)..관심이 많은 터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예전에 저희도 균주개발쪽으로 연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8500PPM이면 화학법대비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데요…아쉽네요.
    선생님 글을 읽고 다시 도전해볼까 생각드네요.ㅋ
    요즘 화학법(로슈, 바스프, 디에쓰엠등) 및 천연법 (미국의 사이노테크, 말레시아 알지텍, 이스라엘 심바이오틱스)등 다국적기업 연구가 많이 되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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