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 수호를 업으로 삼은 의사는 고금을 막론하고 신뢰의 대상이었다. 비록 과거 사회계급으로 의사의 신분을 중인을 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있기도 했으나, 개인의 레벨로 내려가면 의료인은 같은 중인의 신분에 있는 역관이나 기술관과는 다른 특별한 존경의 대상이었음은 변한 적이 없다.
화타, 허준 같은 전설의 명의 이릉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자신의 부귀영달에 개의치 않고 헌신적인 의술로서 타인의 생명을 구한 의료인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아직도 의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는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의 특별한 신뢰와 존경을 배반하지 않게끔 다양한 선서를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러한 의료인의 특별한 의무는 단순한 선서에 그치지 않고, 법률로서 강제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의료법 제23조의 2를 보면 다음과 같은 조문이 있다.
이 법의 기본취지는 의료인이 의약품의 처방 혹은 치료행위를 위한 의료기기를 선택함에 있어 효능과 안전성에 기반하여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결정해야 하며, 업자들의 판촉활동에 영향을 받아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규정하기 위함이며, 처벌규정도 강력하여 위반하는 경우 2년이하의 징역을 처할 수 있고 경제적 이익은 몰수된다. 같은 맥락에서 약사법 및 의료기기법에서는 의료인의 판단기준을 어지럽히는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업자 역시 처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최근에는 정부당국에서 관련규정에 대한 감독 감시를 더욱 강화하여 상기 법령의 예외규정에 해당하는 경제적 이익 제공에 대한 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공표한 바 있고, 담당 부서인 식약청 외에도 공정위까지 나서 국민의 건강을 침해할 수 있는 제약사 혹은 의료기기사의 부당 판촉행위에 대한 감시를 보다 철저하게 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제약사의 부당 판촉행위에 대한 정부당국의 감시는 마땅한 것이며, 제약사도 부당한 경제이익의 제공이 아닌 제품의 효능과 안전성에 기반한 판촉을 통해 영업하는 보다 발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하다 아래의 기사를 동시에 읽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1000원짜리 의약품 1원 입찰의 비밀은?
저가구매인센티브제도 위험합니다
대학병원 의약품 유찰 일파만파
대형병원 약제부장 교체 촉각
의료법에서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 및 의료기관 종사자 모두에게 업자가 제공하는 경제적 편익을 수수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명시해 놓고 이와는 별도로, 보다 중환자를 치료하며, 따라서 의약품의 선정과 처방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종합병원에서는 입찰을 통해 약효나 안전성은 제쳐 놓고 얼마나 싼값에 공급하느냐에 따라 의약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1000원짜리 의약품을 1원에 입찰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가격에 낙찰이 된다는 것. 이것이 부당한 경제적 이익의 제공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지 누가 설명해 줬으면 싶다. 보다 가관인 것은 정부에서 이를 적극 장려하고 있으며, 건강보험 상한금액 대비 얼마나 싼 값에 약을 샀느냐에 따라 그 차액의 70% 를 인센티브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소위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도의 실상이다. 얼마전 만나뵌 모 국공립 대학병원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병원 하나에서만 저가 구매 인센티브를 통해 예상되는 1년 추가 수입이 60억정도라고 하시며, 앞으로 병원 보직 심사는 저가 구매제도 활용을 통해 얼마나 병원에 추가수입을 올려주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도 하신다.
대부분의 의사선생님들은 100대 30이니 선지원이니 하는 주위의 잡소리에 영향받지 않고 묵묵히 환자만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안다. 영업사원과의 친분으로 아니면 그냥 관례라 생각하고 실수로 향응을 제공받을 수도 촌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촌지나 향응때문에 믿지 못하는 의약품을 채택하고 처방하는 의사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임을 믿는다.
정부는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에 먼저 눈을 뜨고, 부당판촉행위를 단속하던 의료보험재정 건전화를 하던지에 앞서, 자신들이 벌인 판 때문에 수천년을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었던 의료인이 입찰 협잡꾼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 먼저 개선해야 할 것이다.
먼저 의료인을 타락시키는 이들을 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