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마음

미국에서 포닥생활할 때 우리팀에서 윈도즈 PC 를 쓰는 사람은 나 하나가 전부였다. 워싱턴주 리치랜드라는 촌동네에 있는 연구소였는데, 시골에 있다는 자격지심인지 다들 뭐랄까 geek 스러운 습성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다양한 사람들 대동단결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컴퓨터는 애플이어야 한다는 점

PC 에 없는 무언가가 애플에는 있나보다 생각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지만, 익숙한 PC 에서 선듯 맥으로 갈아타기는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 돌아와 한참이 지나 스윗치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하루키 선생의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에 실린 글, 사과의 마음“.

사과의 마음

(중략)

나는 대체로 냄새를 맡아보고 신맛이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홍옥을 잘 먹고, 보스톤에 살 때는 매킨토시만 먹었다. 매킨토시는 가장 싼 품종의 하나로 슈퍼에 가면 큰 비닐봉지에 담은 것을 고작 몇 달러에 살 수 있다. 그걸 사서 질리지도 않고 매일 먹었다. 그래서 보스톤 시절을 생각하면 조그많고 짙은 주홍색의 매킨토시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줄곧 매킨토시 컴퓨터를 애용하고 있다. 매킨도시 사과는 McIntosh, 컴퓨터애플 Macintosh. 상표권 관계로 조금 철자가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서 사과를 하나 들고 서재로 간다. 사과 마크의애플스위치를 누른 다음 새벽빛 속에서 화면이 준비되기를 기다린다. 그동안 빨갛고 새콤한 사과를 우적우적 먹는다. 그리고 자, 오늘도 열심히 소설을 써야지 하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그런 생활을 계속해왔다. 절대 윈도스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태로는 매킨도시를 갈아탈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윈도스에는 사과 마크가 붙어 있지 않으니까.

맥을 쓰기 시작한지도 이제 10년이 가까와가고,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왓치, 애플뮤직 애플 생태계에 꽁꽁 묶여 다시 윈도즈나 안드로이드로 갈아타기 힘든 처지가 되어 버렸지만, 그때 읽었던 강렬한 사과 마크 이미지는 아직도 머리속에 아이콘처럼 박혀 있다. 그래서 아직 오래된 맥북에어를 버리지 못하고 간간이 쓰는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신형 맥북에는 사과마크에 불이 들어오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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