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2018년 7월 썼던 글. 정말 묵은지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라는 책을 쓴 하루키 선생은 에세이에서 자기는 회사원 생활을 한번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라는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면서, 차라리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는 식당이라면 이해가 쉽겠다고 했다. 다분히 하루키 선생을 흉내냈다고 밖에 할 수 없지만, 20년 넘도록 회사원 말고는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 없는 내 입장에서 “직업으로서 회사원” 이란 짧은 글 정도는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나 식당이나 사실 기본적인 목적은 다르지 않다. 가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식당이라 하면 아담한 장소에 요리사 한두명과 주인장 그리고 접객하는 종업원 몇명을 생각하지만, 맥도널도 같은 대기업도 따지자면 식당이다. 결국은 운영의 규모인데, 자그마한 식당이라 해도 매출과 이윤을 만들어 내려면 장소를 임대하고, 재료를 구매하고, 또 종업원을 채용하고, 입출금과 수지타산을 맞춰야 한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이런 일련의 작업들을 관리하는 인력들이 늘어나게 되고, 관리도 하나의 업으로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회사원이라 하면 회사내부에서 이러한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직업을 말한다 (물론 회사에는 관리인력보다 식당의 요리사처럼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장인들이 더 많고,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면에서 이들도 회사원으로 봐야겠지만, 여기서는 이 분들은 제외하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 반만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벤처바람이 불었을때, 학교 선배들 만나면 “야 이장영이 제일 먼저 튀어나가 창업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회사에 납작 엎드려 있고” 하면서 가만 있는 사람 바람 불어넣곤 했다. 물론 당시 창업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 회사 생활이 좋았다. 연봉이 빵빵 했냐고? 절대 아니다. 입사 직후 명절때 은행 다니는 사촌형이 연봉이 얼마냐고 꼬치꼬치 캐물어 결국 실토했더니, “야 이 미친놈아 그 돈 받으려고 박사에 포닥까지 했냐” 할 정도로 박봉이었다 (네 우리집이 좀 그렇습니다. 명절때 친척들 모이면 학생한테는 너 반에서 몇등 하냐, 졸업하면 취직 안하냐, 취직하면 월급 얼마냐 뭐 그런 것들만 관심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생각도 못 했던 것들 회사에서 배우는 것이 좋았고, 무슨 일이던 팀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업무의 최종 골은 $$$ 로 표시되어야 하는 것도 좋았다. 2006년말쯤 직딩생활 10년차 접어들던 시점에 모 대기업에서 분사한 바이오 벤처에 이직할 기회가 생겼다. 단순 수평 이직이 아니라 스톡옵션도 있고, 회사차도 내주고 또 C 자 들어가는 근사한 직함도 주는 소위 스카우트 제의였다. 물론 지금와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이유로 내가 퇴짜 놓았지만, 이 회사와 이직 협상 하면서 마음속 한편으론 ” 아 내가 지금 아는 것으로 이만큼의 혜택에 걸맞는 밥값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줄곧 있었다. 그리고는 2007년 당시 다니던 회사의 계열사인 모 제약사로 옮겼고 (계열사간 이동은 이직이 아니라 전적이라 하더군요), 5년간 일하면서 바닥에서의 한국 제약업이 어떤 것인지 톡톡히 배웠다 (당시는 일종의 업무적 학대라고까지 생각 든 적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정말 좋은 배움의 기회였습니다. 그 5년이 없었다면 제약업에 대해서는 정말 피상적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번달 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주당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에 대해서는 사업주가 처벌받게 된단다. 일주일에 5일, 하루에 8시간이 회사원이 생각하는 일반적 근무시간이니 곱하면 주당 40시간, 여기에 12시간이나 더해지는 것이니 별 것 아닐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한참 회사에 미쳐있던 30대 초반 (네 20년 전입니다) 당시는 토요일도 오전에는 근무했다. 그뿐인가 토요일 오후는 낮술의 날이라 하여 퇴근하며 회사 앞 호프집에서 또 모여 일얘기 하다 오히려 평일보다 집에 더 늦게 들어가는 날이 태반이었다. 새벽 공기 맞으며 아무도 없는 사무실 들어가서 불 켜는 것도 좋았고, 9시 넘어 사무실 나오며 “출출한데 뭐 좀 먹고 갈까” 하고 기계우동, 기계짜장 써 있는 국수집에서 고춧가루 팍팍 푼 우동 한그릇씩 먹고 가는 것도 좋았다 (덕분에 체중은 엄청나게 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회사원으로서 20년 상사운, 동료운, 부하운 모두 좋았던 것 같다. 상사가 억지로 시켜 밤늦게 까지, 주말에도 회사 나온 적 없었고, 굳이 내가 시키지 않아도 일이 급하면 부하직원 모두 집이던 사무실이던 죽을둥 살둥 일했고, 대부분 이루어냈다. 물론 그 분들도 일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 배웠으리라 생각한다.
현 정부 노동정책의 기본 철학은 회사는 어떻게 하던 종업원을 빼먹으려 한다에 방점이 찍힌 것 아닌가 싶을때 있다. 그래서 정부는 약자인 종업원을 지키기 위해 최저임금도 급속히 올리고, 노동시간도 얼마로 한정하고. 물론 이런 회사도 없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내 경우에 입각한다면 회사는 종업원이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학교에서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먹고 살라고 돈도 준다.
자 전국의 회사원 여러분. 회사가 우리한테 뭐 빼먹으려 하는지 겁내지 말고, 우리도 회사에서 뭘 빼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합시다. 하지만, 절대 오해는 하지 마시구요. 볼펜 같은 사소한 회사 비품 하나도 슬쩍 빼 먹으면 원칙적으로 횡령입니다.
(PS) 사족을 하나 달자면, 50이 넘은 이 시점에 아직도 내가 회사에서 배우는 게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요즘은 왠지 회사만 나가면 기가 탈탈 털리고 오는 느낌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