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스킨

시작은 노란색 리걸패드였다.

미국에서 포닥하던 시절 A4 사이즈보다 조금 더 정사각형에 가까운 레터사이즈 노란색 리걸패드는 왠지 미국스러움 혹은 이국스러움으로 다가왔고, 이후 어디로 가던 항상 리걸패드를 가져 다니면서 메모하고 쓰고 그리고 해 왔다. 2007년 아모레퍼시픽에서 계열사 태평양제약으로 옮기고 몇년쯤 지났을때여쓴데, 신제품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기억하는 모 회의에 참석했다 (아마도 임원회의 아니었을가 싶은데, 웃기는 것은 회의 참석자중 임원의 비중은 20% 도 안 되었다) 당시 깐깐하기로 유명한 사장님으로부터 “아니 자네는 개발담당 임원이라는 작자가 회사에서 나눠준 회사 다이어리는 어디다 두고 그런 종이쪼가리 들고 다는거야. 당장 회사 다이어리 가져오지 못해!” 하는 버럭 (정확히 모사하자면 버럭을 이것보다 두배 사이즈 폰트로 키워야 한다) 소리 듣고는 노란색 리걸패드와는 강제로 이별해야 했다.

회사가 일부러 경비 들여 매년 다이어리 제작하고 직원들에게 무료로 한권씩 (필요하면 수시로 더 주니 사람에 따라서는 일년에 몇권씩) 나눠주는 정성은 고맙다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려면 다이어리 혹은 노트에 대한 직원들 니즈에 대해 설문조사라도 미리 하던지. 취향과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다이어리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여 여기에 내 머리속을 쏟아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래도 생긴 것이 회사 다이어리와 가장 비슷한 검정색 몰스킨 노트.  2010년부터 써와서 지금 쓰는 것이 벌써 다섯권째이다.

예스24에서 읽을 책 뒤지다가 “밥장 몰스킨에 쓰고 그리다” 란 책 발견하고는 흥미가 생겨 구입하고 지난 토요일 배달 받았다 (여기서 밥장은 저자의 필명이란다. 왜 밥장인지 설명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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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류의 책이 흔히 그렇지만 뭐 대단한 내용이 담긴 책은 아니고, 그저 남들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슬쩍 엿볼 수 있는 더도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 내용이다. 어떤 사람은 영수증이고 명함이고 다 몰스킨에 붙여다니느라 이렇게 까지도 쓴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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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기 직전 읽었던 책이 “아날로그의 반격” 이라는 책이고, 이 책에 디지털 시대에 저항하는 대표주자의 하나로 몰스킨이 언급되어 있어 아마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이제 디지털 시대로 성큼 다가 왔고, 디지털과 공존 차원에서 아날로그의 가치를 잊지 말자 차원 정도면 모를까, 디지털을 배격한 아날로그만의 일상은 생각하지 쉽지 않다. 특히 스마트폰의 그 다양한 기능을 깡그리 무시하고 몰스킨에만 의지해서 살아나가는 것, 불가능하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효율적이라 생각들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몰스킨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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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사진속 만년필은 라미 560 가는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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