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약산업 정말 R&D 가 문제일까?

간만에 집에 일찍 들어와 TV 뉴스 보고 있자니, 3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1.6% 에 머물렀단다. 몇년 이후라고 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역대 최저 수준이란다. 거기에 얼마전 배달된 매경이코노미에는 우리나라 10대 그룹 주력사업 흔들리나 뭐 이런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이런 배경인지 오늘 제약관련 뉴스에는 제약사업이 우리나라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국내 제약산업의 문제가 뭔지 세세하게 꼬집은 기사가 제법 많이 실렸다. 29일에는 국회에서 우리 제약사업의 미래에 대한 워크샵도 열린단다.

공통적인 것은 제약사업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R&D 가 기본인데, 재원도 모자라고 능력도 모자라고 경험도 모자라단다. 이를 위해 천억미만 규모의 제약사가 95% 를 차지하는 제약산업의 영세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 정부가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를 통해 신약개발의 인센티브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 또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정부의 연구지원이 정말 가치있는 프로젝트로 흘러가야 한다는 등등 여러가지 얘기가 오고간다.

근데, 정말 우리나라 제약사업의 문제가 R&D 일까? 누구나 제약사업의 원동력은 R&D 라고 하니, 이에 대해 감히 반론을 내세울 분위기가 아니지만, 전략을 세우려면 먼저 문제의 핵심부터 파악해야 한다. 진정한 문제가 아닌데, 이것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대학에 계시는 분, 정부출연연구소에 계시는 분, 또 기업연구소에 계시는 분 만나보면, 우리나라 참 똑똑한 분들도 많고, 열심히 연구에 정진하시는 분도 많다. 내 바닥이 바이오/제약이다보니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바이오/제약분야는 그렇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이 모양일까?

나는 오히려 R&D 보다는 마케팅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직장으로 옮기기전 대기업 계열의 중견제약사에서 5년 남짓 일했지만, 우리나라 제약사 마케팅 부서는 원론적인 의미에서 마케팅이라기 보다는 영업지원 부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현 직장으로 옮겨야 소위 우리나라 1위 제약사라는 모 제약사와 파트너 관계로 일하고 있지만, 오십보 백보다.

이전 글에서도 한번 언급한 듯 한데, 마케팅의 교과서적 정의는 “serving customer at a profit in different way from competitors” 이다. 키워드는 customer, profit 그리고 differently 이다. 우리 제약사 마케팅의 문제는 customer 와 profit 에 있는 것이 아니라 differently 에 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연구비가 투여된다는 항암제를 한번 보자. 이렇게 연구하다보면 언젠가는 암을 완전히 정복하는 날이 오겠지만, 아직도 말기 환자 대상으로 하는 항암제의 임상 지표는 대조약 대비 몇달이나 더 사느냐가 핵심이다. 치료 여부가 아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환자의 심정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암에 걸려 시름시름 앓으면서 몇달 더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몇달 더 사는게 왜 중요한지 논리를 만들고, 지표를 만들고, 그리고 그에 맞는 약을 개발하고 그래서 수천억, 수조원짜리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내는게 선진제약사의 비지니스이다.

조금 감이 와 닿는 질병, 고혈압을 보자. 나 자신 고혈압 환자고 약 복용한지 5년이 넘어가니 혈압약에 대해서는 경험으로 좀 안다. 사실 본태성 고혈압은 환자마다 그 원인이 수백 수천가지라 뭐가 병인인지 잘 모른다. 대부분의 의사는 기준이 되는 몇가지 약부터 시작하여, 혈압이 얼마나 잘 조절되나 보고, 이약 저약으로 바꿔간다. 전문용어로 titration 이라 한단다. 그리고 대략 조절되는 약이 있으면, 그 약 평생 처방한다. 예전에는 혈압약이라는 것 수축기 혈압이 최소 150은 넘어야 먹었단다. 이제는 130만 넘어도 왜 혈압을 조절하는게 중요한지, 수십 수백가지 논문을 인용하며, 설득하여 약을 처방한다. 그뿐인가, 환자가 느끼기엔 그놈이 그놈 같은 약인데,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이건 효능이건 코딱지 만한 차이만 잡혀도, 그 잘난 통계적으로 유의성 있다는 자료를 들이밀며, 플러스 왜 그 코딱지가 중요한지 갖가지 설명을 곁들여 역시 수천억, 수조원짜리 블록버스터를 만든다.

마케터의 미션은 이 코딱지만한 차이를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코끼리만큼 부풀려, 그 가치의 차이를 인지시키는 것이다. POC 란 말 많이 쓰는데 Proof of Concept 을 의미한다. 이 concept 를 잡아내고, 이것을 어떻게 입증하는지 이것이 바로 마케팅이고, 이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R&D 이다.

물론 이와는 상관없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 있다. 예를들자면, medicinal chemistry 같은 것이 한 예일 것 같다. 얼마전 만난 medicinal chemistry 전문가 한분 말씀이 신약개발은 화학자가 손 떼는 순간 끝난다고 한다. 사실 어떤 화합물이 합성되면, 신약은 개발된 것이다. 다만, 그것이 똥인지 약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차이다.

율곡 이이 선생처럼 10만 양병설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원이 100명이 필요하다면, 이런 마케터는 5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speak loud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3분기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애플의 거의 두배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면 뭐하나. 이익은 몇분의 일밖에 안 되는데. 가치는 연구원이 혹은 엔지니어가 만들어낼 지 몰라도, 그것을 시장에 전파하고, 현금으로 바꾸는 일은 마케터가 한다. 그리고 우리 제약사업은 이 제대로 된 마케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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