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이런 생각을 한 적 있었다. 남한 인구가 3000만명이라는데, 이 사람들이 일인당 나한테 100원씩만 주면 바로 30억 모을텐데. (아마 당시에도 100원이 갖는 부담은 그닥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생각을 일기에 적었더니, 담임선생님이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장영아 한 사람당 100원을 걷으러 전국을 돌아다닐 생각을 해 보렴. 아마 수입으로 생기는 100원보다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클걸?”. “아 그렇구나, 그래서 이런 비지니스는 성립이 안 되겠구나.”
나이가 40을 훌쩍 넘어 모 바이오 기업의 사업개발을 총괄하는 입장에서도, 비지니스란 것 현실과 어릴적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남에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느냐가 핵심이다. 그 돈이 백원이건 만원이건 아무 댓가 없이 넘겨줄 사람은 없으므로, 여기서 가치와 가격 그리고 비용의 개념이 도입된다.
가치의 정의를 찾아보면 “something that matters” 란다. 사람마다 가치의 척도는 다르므로, 똑같은 offering 을 보고서도 누구는 감동하는 반면, 누구는 무관심하다. 여기서 고객의 개념이 들어온다. 어떤 사람이 느끼는 가치가 150원인데, 가격은 100원이면 교환을 통해 이 사람은 50원의 잉여 (소비자 잉여) 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offering 을 만드는데 50원이 들었는데, 가격이 100원이면 이 사람은 교환을 통해 50원의 잉여 (공급자 잉여)를 얻게 된다.
구입은 예전에 했지만 한참을 처박아 두고 있다가, 새벽에 일어나 다시 읽기 시작한 책이 “Starbucks: Everything but coffee” 이다.
비지니스 매개의 핵심은 커피로 보이지만, 실제로 교환되는 가치는 커피가 아닌 제3의 무엇이라는 것이 이책의 주내용이다. 제3의 그 무엇에는 익숙함, 배타성, 동질성, 편안함등의 다양한 경험가치가 있단다.
제약사업은 전통적으로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비지니스이고, 따라서 사업에 있어 부가적이나 교환의 핵심이 되는 제3의 무엇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약이라는 것이 적절한 세팅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는 이유가 컸었다.
지식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는 지금도 불치병은 세상에 널려있다. 많은 경우 항암제 개발에 있어 임상시험의 골자는 extenstion of life 인 경우가 많다. 치료가 되느냐 여부가 아니라, 환자가 약을 복용함으로써 얼마나 더 오래 사느냐가 핵심이고, 어떤 경우 control 그룹 대비 3-4개월 더 오래 산다는 결과만으로 판매승인이 되기도 한다.
주위에 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없으니, 그 상황을 몸으로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3-4개월 더 살기 위해 약을 먹고, 그 혹독하다는 방사선, 화학요법 치료를 받는 것일까? 결국은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 투병기간동안 마음의 평안, 오히려 조금은 호전된 상태에서 죽음을 받아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이런것들이 이들이 약값을 내고 추구하는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가치는 반드시 약으로만 구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몇달전 약가인하로 죽는다 죽는다 하지만, 제약업에서도 제3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 볼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