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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경제학?

학력 파괴, 고졸 우대 이런 얘기들 언젠가부터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아마 경제민주화 등등 대선 이슈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오늘자 조선일보 고졸의 경제학이란 제목의 기사를 읽고는 한마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학 전공과 직업이 꼭 일치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도 국내에서 제일이라는 서울대가 세계 순위로 보면 50등에도 못 미치는 현실에서, 경제순위로 10위권에 있는 우리나라, 대학졸업이 경쟁력이란 말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과거를 대상으로 What if 란 가정은 항상 다른 한 길을 가보지 않고 하는 것이기에 그 진실성에 얼마나 점수를 주어야 할 지 몰라도, 만일 내가 대학을 나오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해도 지금보다 능력이 많이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80년대 대학교육이란 것이 툭하면 수업거부, 시험거부에 간만에 제대로 학기가 시작되면 반가운 마음에 메일 술만 퍼 먹었었으니. 일례로 우리나라 역사상 대학을 나오지 않은 두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 시절 우리가 특별히 통치 능력이 모자라 어려움 겪었나 생각해 보면 아니올시다 이다. 현대 그룹을 일군 창업자 정주영 회장도 국졸의 학력이다. 일단 입학은 하고 때려 치운 것이니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고졸은 아니라 할 지 몰라도, 혁신의 대명사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그리고 최근의 마이클 주커버그 다 고졸이다.

문제는 고졸 출신들이 갖는 자격지심이 아닐까 싶다. 자격지심이란 것이 이들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사회의 차별적 인식이 그 원인이겠지만, 우리 나라에서 대학을 가려면 입시란 엄청난 경쟁에 늦어도 고등학생 부터는 휘둘려야 하고, 대학 진학 이후에도 4년간 일년에 천만원 가까운 학비를 투자해야 하니, 대학을 졸업하면 그에 걸맞는 어떤 혜택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사회적 특권 의식이던, 취업의 용이성이건, 승진의 가산점이건. 대학 가라고 의무적으로 등 떠미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자유 선택에 의해 진학 하는 것이니, 군대 복무 혜택 여부와는 다른 얘기이다.

고졸은 입시에 휘둘리는 대신 조기 취업으로 진로를 결정한 셈이고, -고졸 자격만으로 (좋은 직장) 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 알지만- 어쨋든 대학 진학자들이 학비 투자하는 기간 동안 이들은 먼저 돈을 벌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직장에서 업무상 경쟁력이 떨어지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로, 이들이 정한 진로는 대학 졸업자들에 비해 성공을 위해서는 because of 보다는 in spite of 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대학 교육의 실제 경쟁력과는 별개로 공교육은 기본적으로 학생이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는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데 그 형식적 목적이 있다.

따라서 비록 대학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졸자와 구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램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구별과 차별은 다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능력이 떨어진다, 사회적응력이 약하다 등의 말도 안 돼는 차별이야 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도 막아야 겠지만, 고졸은 고졸이고, 대졸은 대졸, 더 고등교육 졸업자는 석사, 박사인 것이다. 그리고 대학을 갈지 말지, 고등교육을 더 받을지 말지 결정함에 있어 암묵적으로 앞으로 인생에서 이런 구별이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고 이를 수용한 것이다. 그래 놓고 나중에 대학교육이 뭔 소용이야, 대학원 나와야 뭐해 일도 잘 못하는데 하는 태도는 무책임한 것이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고졸이나 대졸이나 혹은 그 이상의 학력이나 구별하지 말고 똑같이 대하라가 아니라, 선택의 기로에서 가정환경이나, 경제사정등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부효과에 휘둘리지 않도록 균등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그게 다다. 좀 더 좋은 대학 가려고 사교육을 받던 어쩌던 거기 왜 정부가 참여해서 이러니 저러니 훈수 두냐 말이다. 정부가 개입하면 개입할수록 대입제도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진다는 것, 지난 십년동안 사례가 충분히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나는 이러한 기준에서 대학 진학을 스스로 포기했고, 대졸자에 비해 이런 장점이 있으니 후회하지 않는다가 훨씬 더 멋진 자세 아닐까? 나라가 무능해서 한일합방 되었는데, 일제시대에는 일본인인척 하고, 창씨개명에 친일 행위 하다가, 해방되고 나니 언제 그랬냐 듯 반공주의자 애국자가 되고, 공산주의 민주주의 헤메고…이런 사람들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60년 어영부영 살아 오니 나라가 뭔 쾌만 생기면 이거 이렇게 해달라, 저거 저렇게 해달라…

(PS) 울컥한 김에 런던올림픽 주제 하나. 선수단 보다 더 많이 참가한 임원진들 그 쪽수로 밥만 축내지 말고 할 일 없음 빨리 와라. 신아람 선수 오심에 도대체 이게 뭔 망신살이야 말이다. 모 기자 기사처럼 동네 운동회도 아니고, 오심을 바로 잡아야지 웬 공동 은메달? 예전 미국 대선에서 알 고어가 대의원 수에서는 졌지만, 전체 득표에서 앞섰다고 조지 부시랑 그럼 4년간 공동 대통령 하냐? 북한은 그래도 자기네 국기 잘 못 계양되었다고, 한시간 넘게 항의 하다가 운영측으로부터 다 사과 받고 하잖냐? 그지도 아니고 사과도 못 받고, 엄한 IOC 에 공동은메달 구걸하다 그것도 거절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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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과 학력

우리나라에서 학벌과 학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요즘은 교육제도가 많이 바뀌어서 아닐 수도 있지만, 최소한 내 아래 위 +/- 10년은 해당된다). 쉽게 말해 학벌이라 함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의 문제이고, 학력이라 함은 어디까지 공부했느냐의 기준이다. 내가 말하는 학력은 박사학위를 했느냐 여부를 말한다.

학력의 (aka 박사학위의) 핵심은 research 를 통한 meaningful novel finding 의 여부에 달려 있다. 물론 이것이 실생활과 연결되어 useful 까지 가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필요없다. meaningful AND novel 이면 충분하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주제에 대해 지금까지 모든 finding 을 먼저 섭렵해야 한다. Otherwise, 그것이 novel 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섭렵한 finding 으로부터 open question 을 도출해야 한다. 출제는 내가 한다. (물론 지도교수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다).  Open question 의 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다수의 가설이 만들어져야 한다. 시험을 치루는 것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4지선다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문자 그대로 OPEN 이. 그리고 이것이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증명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심사위원 (여기에 약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최소한 내가 졸업한 학교만큼은 이 부분은 공정했다) 이 이 방법론을 인정해야 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novel 과 meaningful 이 평가되고 결정된다. 기본적으로 이 싸움은 혼자만의 싸움이다. 물론, 이 세상 연구를 혼자 독차지하여 하는 거싱 아니므로 우연히 같은 주제 같은 가설에 대해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동료 (peer) 연구자와 속도와 퀄리티에서 경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 배경은 이 경쟁자보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질좋은 논문이 아니므로, 혼자의 싸움이라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반대로 학벌의 문제는 경쟁이다. 어떤 과목, 어떤 시험을 볼 지 결정되어 있다. 심사위원 (출제위원) 은 부분이 아니라 전부다. 이들이 문제를 제시하고, 이들이 답을 채점한다. 도전자의 창의력 같은 것은 없다. 주어진 문제에 이미 정답은 존재하고, 경쟁 관계에 있는 수험자들을 솎아 내기 위해 오답이 들러리 처럼 서 있다. 여기서 정답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배운 지식을 통해 골라내는 것이다. 출제위원의 비꼬기, 틀기에 흔들리지 않고 얼마나 많은 정답을 골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고, XX대냐 non (XX) 대냐가 결정되고, XX대는 승이고 나머지는 다 패다.

요즘은 SCI 인용횟수등으로 학력의 질도 숫자로 평가된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이는 편의를 위함이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뉴톤의 논문과, 아인쉬타인의 논문을 어찌 90점, 80점으로 채점하여 나래비를 세우겠느뇨? 그렇다고 이 둘간의 질을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두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측정할 수 없을 뿐이다. Alan K 라는 천재가 한 말을 후세의 머저리는 이렇게 해석한다. “(숫자로) 측정할 수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후세의 머저리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을 때만 측정했다고 단정한다. 측정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관심도 없다. 한심하다.

학벌이 훌륭하신 분은 이 집단측정의 승리자이고, 이들의 가치관은 학을 떠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4지선다형의 달인들이라 사회의 모든 문제 역시 4지 (너그럽게도 5지도 종종 받아들여진다) 로 압축되기 바란다. 그리고 그 4지건 5지건의 선택범위내에서 가장 점수가 높은 것을 선택하려고 한다. 선택 기준은 관심도 없다. 점수가 중요하다. 회장님이 맘에 드실만한 것, 대통령이 좋으 하실만한 것, 그것이 모호하면 나중에 제일 욕을 덜 먹을 것 등등이다. 채점은 공정해야 한단다. “공정”의 의미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이다. 여기에는 법, 사규, 규칙 혹은 재무성과등이 들어간다. 윤리나 정의, 원칙이나 철학은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배제된다.

그리고 주류사회는 이 학벌이 훌륭하신 분들이 지배한다. 그리고 이 지배를 점점 더 공고히 하는 부류는 학벌도 학력도 내세울 것 없지만, 이들에 기생해서 살아야만 하는 머저리들이다.

(PS) 여기서 말하는 박사학위라 함은 어느정도 은유가 섞여 있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지 않아도, meaningful and novel finding 을 찾아낼 길은 많다. 위대한 석사논문 vs 찌질한 박사논문도 훌륭한 example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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