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학벌과 학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요즘은 교육제도가 많이 바뀌어서 아닐 수도 있지만, 최소한 내 아래 위 +/- 10년은 해당된다). 쉽게 말해 학벌이라 함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의 문제이고, 학력이라 함은 어디까지 공부했느냐의 기준이다. 내가 말하는 학력은 박사학위를 했느냐 여부를 말한다.
학력의 (aka 박사학위의) 핵심은 research 를 통한 meaningful novel finding 의 여부에 달려 있다. 물론 이것이 실생활과 연결되어 useful 까지 가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필요없다. meaningful AND novel 이면 충분하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주제에 대해 지금까지 모든 finding 을 먼저 섭렵해야 한다. Otherwise, 그것이 novel 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섭렵한 finding 으로부터 open question 을 도출해야 한다. 출제는 내가 한다. (물론 지도교수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다). Open question 의 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다수의 가설이 만들어져야 한다. 시험을 치루는 것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4지선다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문자 그대로 OPEN 이. 그리고 이것이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증명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심사위원 (여기에 약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최소한 내가 졸업한 학교만큼은 이 부분은 공정했다) 이 이 방법론을 인정해야 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novel 과 meaningful 이 평가되고 결정된다. 기본적으로 이 싸움은 혼자만의 싸움이다. 물론, 이 세상 연구를 혼자 독차지하여 하는 거싱 아니므로 우연히 같은 주제 같은 가설에 대해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동료 (peer) 연구자와 속도와 퀄리티에서 경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 배경은 이 경쟁자보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질좋은 논문이 아니므로, 혼자의 싸움이라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반대로 학벌의 문제는 경쟁이다. 어떤 과목, 어떤 시험을 볼 지 결정되어 있다. 심사위원 (출제위원) 은 부분이 아니라 전부다. 이들이 문제를 제시하고, 이들이 답을 채점한다. 도전자의 창의력 같은 것은 없다. 주어진 문제에 이미 정답은 존재하고, 경쟁 관계에 있는 수험자들을 솎아 내기 위해 오답이 들러리 처럼 서 있다. 여기서 정답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배운 지식을 통해 골라내는 것이다. 출제위원의 비꼬기, 틀기에 흔들리지 않고 얼마나 많은 정답을 골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고, XX대냐 non (XX) 대냐가 결정되고, XX대는 승이고 나머지는 다 패다.
요즘은 SCI 인용횟수등으로 학력의 질도 숫자로 평가된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이는 편의를 위함이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뉴톤의 논문과, 아인쉬타인의 논문을 어찌 90점, 80점으로 채점하여 나래비를 세우겠느뇨? 그렇다고 이 둘간의 질을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두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측정할 수 없을 뿐이다. Alan K 라는 천재가 한 말을 후세의 머저리는 이렇게 해석한다. “(숫자로) 측정할 수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후세의 머저리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을 때만 측정했다고 단정한다. 측정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관심도 없다. 한심하다.
학벌이 훌륭하신 분은 이 집단측정의 승리자이고, 이들의 가치관은 학을 떠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4지선다형의 달인들이라 사회의 모든 문제 역시 4지 (너그럽게도 5지도 종종 받아들여진다) 로 압축되기 바란다. 그리고 그 4지건 5지건의 선택범위내에서 가장 점수가 높은 것을 선택하려고 한다. 선택 기준은 관심도 없다. 점수가 중요하다. 회장님이 맘에 드실만한 것, 대통령이 좋으 하실만한 것, 그것이 모호하면 나중에 제일 욕을 덜 먹을 것 등등이다. 채점은 공정해야 한단다. “공정”의 의미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이다. 여기에는 법, 사규, 규칙 혹은 재무성과등이 들어간다. 윤리나 정의, 원칙이나 철학은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배제된다.
그리고 주류사회는 이 학벌이 훌륭하신 분들이 지배한다. 그리고 이 지배를 점점 더 공고히 하는 부류는 학벌도 학력도 내세울 것 없지만, 이들에 기생해서 살아야만 하는 머저리들이다.
(PS) 여기서 말하는 박사학위라 함은 어느정도 은유가 섞여 있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지 않아도, meaningful and novel finding 을 찾아낼 길은 많다. 위대한 석사논문 vs 찌질한 박사논문도 훌륭한 example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