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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튀김 이야기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입학하느냐에 남은 인생 전부가 달렸다고 생각한 적 있었다. 1985년 고3때였으니 벌써 29년전이다.

큰 놈이 올해 고3. 대입을 코앞에 두고 있다. 어제 저녁 먹으며 자기소개서 써야 하는데 어찌 써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기에 한참 전 읽었던 하루키의 잡문집 첫 꼭지 굴튀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줬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 를 주제로 원고지 4매 이내의 글을 써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답한다. “그렇다면 굴 튀김에 관해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런 말도 덧붙여 줬다. “무슨 글이던 독자를 생각해야 돼. 자기소개서는 일기가 아니거든. 글을 읽을 사람이 누구에게 그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봐. 물론 그렇다고 허황된 거짓말을 쓰라는 것은 절대 아냐. 시험관이 바라는 것이 뭐겠어. 이 지원자가 우리 학교 우리 과에 입학해 우리가 지향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거겠지. 하지만 시험관도 사람이니, 수십 수백명이 거기서 거기인 그런 글 반복해서 읽고 싶지 않을거야. 굴튀김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구체적이지 않은 지루한 주장을 나열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내 경험중 특정 부분에 촛점을 맞추어 가장 실감나게 써보라는 거지. 독자가 이로부터 유추해서 너에 대해 보다 더 잘 알 수 있도록. 그리고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도록.”

축구부 주장이었고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합격한 아들네미 일년 선배가 있다는데, 이 친구 쓴 자기소개서만 보고 학교 선생님들이 얘는 합격이다 생각했단다. 축구선수로서 골을 넣을때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공의 궤적을 수학적으로 분석했고, 이를 통해 어떻게 킥을 해야 할지 탐구했단다. 궤적을 분석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했고, 이로써 골 성적이 어떻게 개선되었는지. 

인터넷 뒤져 보기 굴튀김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블로그가 있어 도대체 굴튀김 이야기가 뭐길래 하는 분들을 위해 링크 걸어본다. (하루키 굴튀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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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예전 자료를 찾아볼 일이 있어 과거 자료 백업용 하드를 꽂아 이것저것 열어보나다가, 98년 11월 아마도 모 대학 교수자리 지원하면서 쓴 자기소개서 같은데 찾았다. 큰 놈이 문과 선택하면서 자기는 문과인 문과인 하두만, 그 피가 어디서 왔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 회사 생활 15년 하면서 수백통의 자기소개서 읽어봤지만, 아직 이만한 것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자뻑하는 자기소개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기소개서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고, 그 목적을 다 하지 못한 자기소개서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면, 지금쯤 어느 대학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교수자리 꿰차고 앉아 있어야 했겠지…

자기소개서

95년 8월 생물공학으로 KAIST 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는 바로 미국으로 포스트닥 길을 떠났습니다. Battelle Pacific Northwest National Laboratory 라는 비교적 긴 이름의 미국 에너지성 산하 국립연구소로서, 처음에 제가 원한 곳은 기업 연구소였지만, 그만큼은 못해도 현재 field 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생물공학에 대해 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년, 귀국길에 오르는 제 마음은 기대감 그 자체였습니다. 일년이란 기간동안 세계적 유수저널에 논문 두편, DuPont Merck 라는 대기업과 기술협상이 벌어질 정도의 미국특허 한편, 엄청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터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특히 당시 생물공학 분야중 가장 전망이 밝다는 독성물질의 분해 및 전환에 관한 논문만 열편이 넘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만 가면 대학이고 연구소고 제가 원하기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귀국후 현실은 판이했습니다. 여러대학의 교수초빙 공고에 응모해 보았지만, 결과는 항상 “다음 기회에” 였습니다. 96년 9월 귀국후 현직장에 자리잡기까지 명목상은 second postdoc, 실상은 job serach 로 날을 지새던 9개월 동안 제 머리속에 맴 돈 생각은 “Why not me ? “ 였습니다.

동양사상의 근간은 “음양의 조화”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음과 양의 기운을 함께 가지고 있으나, 다만 어느것이 더 적극적으로 발현되느냐에 따라 음도 될 수 있고 양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라고 남성호르몬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호르몬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남자는 남성호르몬이, 여자는 여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것일 뿐, 남성과 여성 공히 그 건강은 이 둘 사이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직장생활 이제 16개월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과거에 그렇게도 자신만만했던 제가 왜 그렇게 고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는지 가끔씩 이 “음양의 조화” 와 연관시켜 생각해 봅니다. 한번, 두번, 세번 교수초빙에 응모할 때마다 자꾸 떨어지자, 주위에서는 대학교수가 되려면 로비가 중요하다느니, 모교출신도 뽑기 어려운 마당에 타교출신을 뽑겠느냐, 여러가지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우수한 논문만 많이 발표하면 됐지, 그깟것들이 얼마나 대수겠느냐.” 저는 더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대학도 있었겠지만, 당시 제가 알아 본 바로는, 제가 지원한 대부분 대학이 공정한 심사기준이 있었습니다. 최종 면접까지 올라가 제 경쟁자를 보아도 그 연구업적이 대학교수가 되는데 큰 무리가 없어 보였고, 반드시 S 대나 모교출신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경우 객관적인 기준에서 제 연구업적이 그들보다 훨씬 뛰어났슴에도 불구하고 제가 안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왜였을까요 ? “

당시 저에게는 열몇편의 논문으로 증명되는 연구업적과 연구에 대한 열정이 전부였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도, 기업에서 조직문화를 배울 기회도 없었습니다. 대학교수는 연구자이자 일종의 관리자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에 대한 창의성, 열정, 집착과 함께 자신이 속한 과, 단과대, 크게는 대학이란 조직의 관리 및 활성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속한 학생들을 장래의 기술자, 기업인, 또는 학자로 양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리하고 질책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연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연구자와 관리자라는 어찌보면 상반된 음양이 잘 조화되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당시 제게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이란 조직은 어찌보면 참으로 냉정하고 잔혹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극기와 수양이란 측면에서 좋은 배움의 장소가 아닌가 합니다. 아무리 창의적이고 대단한 아이디어도 주위와 조화되지 않으며 사장되기 일수이고, 아무리 열심히 근무해도 상사를 모시는 태도가 공손치 못하며 진급에서 누락되는 것이 기본인 곳입니다. 기업에서 일한지 이제 겨우 십육개월 남짓이지만, IMF 란 대변혁기였던 탓에 조직의 생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남과 잘 조화되고, 어떻게 해야 아랫사람을 잘 관리할 수 있는지 체득할 수 있는 좋을 기회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연구결과를 얻어야 하는 경제성의 원리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약 오개월 남짓 일했던 연구기획의 기술이었습니다.

기업에서 배울 수 있었던 이러한 것들이 과거 연구열정 하나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던 철부지를 이제 조직이 무엇이고 조화가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하는 좀 더 성숙한 어른으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 경헙과 열정을 본래 제 꿈이었던 대학교수로서, 학생들 그리고 선후배 동료 교수님들과 함께 나누고 또 더욱 배우고 싶습니다.

이번 기회가 또 낙방이란 결과가 되더라고, 실망하지는 않겠습니다. 연구에 대한 열정을 뜨겁게 유지하면서 지금까지처럼 배우고 익히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998년 11월 2 일 이 장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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