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실험실 생활 할때는 손에 물만 안 묻힌다면 어떤 일이라도 다 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고, (당시 의미 그대로 해석하는 경우) 지금은 정말 손에 물 안 묻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손에 물이나 흙 안 묻히는 일을 하려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여서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될때는 일 하나 않고도 남이 한 일에 슬쩍 끼어 편하게 살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돌아갈 때는 남의 똥까지 다 묻혀 가면서 힘들게 살게도 되는 것이 이 일인 것 같다. 옛날 누군가가 몸은 고되어도 천하의 마음은 편한게 땅 파 먹고 사는 거랬다는 글도 읽은 바 있지만, 사람한테 치여가며 밥 벌어 먹고 사는 일 결코 쉽지 않다.
위치상 한마디 하고 넘어가야 할 자리에서 입 꾹 다물고 있는 사람, 편들어 주겠다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도 나몰라라 하는 사람, 총론 얘기만 반복하다가 각론에 도달하면 자리를 뜨는 사람. 워낙 이런 파편들을 많이 보며 자라온 터라 윗자리 올라가도 나만은 그러지 말아야지 수십번 다짐 했지만, 어쩌다 보니 물에 빠져 가는 사람 눈 앞에 두고 뒤돌아 서야 하는 상황에 오게 되었다.
최근 들어 그냥 피펫이나 잡고 실험이나 열심히 할 걸, 뭔 비지니스 비지니스 하며 사람 사이에 부대끼면 사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