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소짓게 하는 옛날 옛적 기억들

주초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컴퓨터가 갑자기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으니 와서 좀 봐 달라는 부탁이다. 돌아보면 일주일 내내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짬내기가 뭐 그리 바빴는지 결국 주말이나 되어서야 본가에 찾아갔다. 컴퓨터 문제는 별 것은 아니어서 쉽게 해결할 수 있었고, 간만에 온 김에 옛날 내방에서 책도 보고, 잠도 자고 딩굴대다 예전 사진첩, 스크랩북들 들쳐 보며 하루를 보냈다. 나이가 들면 다들 그런건지, 옛날 사진과 옛날 스크랩들, 어제 역시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미소를 띠게 한다.

첫번째. 어릴적 앨범 첫장을 장식하는 사진이다. 백일때 사진 아닐까 싶은데, 친절하게도 사진 밑에는 엄마가 이름과 생년월일 (시까지) 그리고 출생시 몸무게 키등을 적어 놓으셨다. 백일때 기억 나는 사람 있기야 하겠나만, 나한테도 이런 시절 있었나 싶다.

두번째. 내 이름 김봉수라는 작명가가 지었다는 말은 전해 들었지만, 이런 증서가 있는 줄은 몰랐다. 얼마전 식구들과 함께 간 봄나들이에서 지하철 경복궁역 나오니 바로 김봉수 성명철학원이 있두만, 여기 주소도 내자동인 것으로 보아 아마 그때 그자리에서 계속 영업하고 있는 듯 싶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김봉수란 양반은 돌아가셨다는. 추천 이름 옆에는 부모운, 부부운, 재물운등등도 같이 나와 있는데, 글씨가 워낙 흘림이라 뭔 내용인지는 해독불가.

세번째. 이장영 생애 첫 미술작품이란다. 장르로 따진다면 초상화가 아닐까 싶고, 구상과 비구상의 중간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네번째. 아마 동네에 약장수가 왔었는지 카우보이 모자에 장난감 총까지 들고 엄숙하게 찍은 사진이다.

다섯번째. 앨범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한때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다며 자가용 타고 포도밭에 놀러간 사진 꺼내 보여주신다. (동생말로는 남의 차 앞에서 우리차인척 하고 찍은 사진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여섯번째.  초등학교 졸업사진이다. 우수운 것은 오른쪽 상단에 독사진 조그맣게 실려 있는 것인데, 어렴풋한 기억으론 아마 이 친구 졸업사진 촬영할 때 결석하여 사진이 안 나왔는데, 부모님이 강력히 항의하여 어거지로 실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일곱번째. 고등학교 졸업 앨범이다. 급훈이 “하면 할 수 있다” 이다. 공수부대 안되면 되게 하라 냄새도 나고, 한반에 아마 한 60명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조개탄 난로에 빽빽히 구겨 앉아 쭈그리고 책보고 있는 것 보니 상문고 구리긴 하다.

여덟번째. 두발자율화 시절에도 스포츠머리 고수하던 신흥명문(?) 상문고 재학시 내 사진이다. 남들 표정은 심각하두만, 빡빡머리에 나름 미소를 헤하고 흘리고 있다. 옆에 있는 신문기사는 상문고의 단정한 머리를 본 받고자 주위 학교도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는 84년 4.11일자 조선일보 기사인데, 기사와 관련 모종의 돈냄새가 풍긴다.

아홉번째. 대학교 일학년 일학기 등록금 납입 영수증인데, 71만350원이다. 일년으로 치면 약 140만원 된다는 얘긴데. 요즘 대학 등록금이 일년에 한 천만원 한다 하는 것 같던데, 대략 계산하면 7배 정도 오른 셈이다. 내 기억에 일학년 연대앞 독다방 커피가 한잔에 6백원 (커피 한잔 시키면 무화과 잼과 함께 모닝롤 빵도 줬다), 요즘 아메리카노 한잔에 4000원 남짓하는 것 생각하면 대학등록금이 턱없이 오른 것 같지는 않네.

열번째이자 마지막. 우리때는 대학에서도 교련이 필수과목이었고, 일학년때는 문무대, 이학년때는 전방입소가 있었다. 아마 나 2학년 되며 전방입소가 필수에서 자율로 바뀐 것 같은데, 내 기억에 이념적인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는 있어도, 자율로 전환되었다고 일부러 안 가는 놈은 못 봤다. 중앙일보 기사인데 자율화 되기는 했지만, 학생들의 호응이 대단하고, 참여한 학생들이 모두 유익했다고 평가한다는 검열 냄새가 폴폴나는 80년대식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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