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비시 연필깎이

십오년도 더 전이었던 것 같은데, 동경으로 출장 갔다가 남는 시간 들렀던 시부야 도큐한즈, 정말 천국이었다. 나름 개취라고 아키하바라 간담까페, 만다라케의 프라모델, 간다의 헌책방등등 좋아하는 장소가 다 다르다지만 (아 누구는 갈때마다 잊지 않고 새벽 츠키지 시장 들른다고도 합디다), 나한테는 여기가 제일 좋았다.

7층인가 8층인가 되는 높이 한층이 세개의 복층으로 이루어져 빙글빙글 어지럽기도 했지만, 엘리베이터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밑으로 내려와도, 밑에서 꼭대기까지 계단 걸어 올라가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무엇보다 한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명품 브랜드 아닌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도큐한즈에서만 볼 수 있는 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런 브랜드 제품들. 듣보잡 (이라고 하기엔 뉘앙스가 많이 다릅니다) 이라 할 수 없는게 진열된 제품 가격표를 들여다 보면 눈 튀어 나오는 것들이 제법이다. 일례로 일본 초등학생들 메고 다니는 베낭 가방 (일본어로는 가다가나로 란도세루라 쓰는) 하나가 8만엔 그랬던 기억 난다.

걔중 그래도 만만했던게 6층인가 7층에 있는 문구점. 이것저것 쇼핑바구니에 담았다 내려놓았다 하다 들고온게 이 빨간색 전수동 연필깎이. 십년 가까이 잘 쓰고 있었는데 (뭐 연필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라 횟수로 따지자면 그닥 많이 쓰지는 않았습니다), 작년인가 재작년 고장나더라 (큰 고장은 아니고 연필심이 기울여져 깎이는데, 저 그런 사소한 것 매우 민감합니다). 없다고 못 사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필요할때 없으면 불편한게 연필깎이라 (그래 나 칼로 과일도 못 깎는다), 하나 사려 보니 한국에서 연필은 모두 어린 여자애들만 쓰는지 연필깎이 디자인이 가관이다 (나 같은 아저씨가 그런거 몰래 쓰다 들키면 롤레타 취향 있는줄 알지도 모릅니다). 결국 일본갈 기회 노렸다 다시 도큐한즈 들려 같은 연필깎이 이번엔 세개 사 가지고 왔다. (이번것도 한개당 십년 쓴다 가정하면 세개째 고장나면 여든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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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 넘도록 써온 연필깎이지만 오늘 사진 찍으면서야 제조사가 미츠비시인 줄 알았다. 일본 제조업은 뭐랄까 교토의 장인이 오로지 한가지만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듯 하지만, 알고 보면 한국 재벌 양쪽 싸대기 한두번 갈 길 정도로 문어발들 많다. 그러고보니 나 애장하는 제트스트림 볼펜도 이 회사 제품이다 (이것도 여적 모르다 엊그제 우리 마케팅 부서장이 자기는 미츠비스에서 나온 볼펜 1.0mm 까지 좋아한다는 얘기 듣고 그 회사것인 줄 알았다).

글 초장만 보고 도큐한즈에 대한 심오한 고찰 혹은 개인적 감상을 기대하셨다면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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