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면 일본은 골든 위크라 해서 긴 연휴가 있단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연휴가 있으면 떠나기 마련이라, 기차역이고 공항이고 많이 붐빈다. 어제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집에 돌아오는데, 대한항공 첵인 카운터 직원이 발권해 주며, 대한항공 라운지는 출국심사장 밖에 있는데, 오늘은 골든위크 피크타임이라 많이 붐비니 여유있게 들어가시는 것이 좋겠다 한다. 김포공항도 그렇지만, 라운지라는게 붐비는 보안검색, 출국심사 다 끝내고 비행기 뜨기 전 느긋하게 뭐도 좀 먹고 신문도 보고 해야 하는데, 출국심사장 밖에 있다 하니 눈살이 좀 찌프려 지더라. 커피 한잔 뽑아 들고 30분이나 앉아 있었을까 여유있게 가보자 싶어 게이트로 향하려니, 직원 말대로 출국심사장 앞에 줄이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길더라. APEC 카드 소지자는 fast track 해주는 경우도 있어 물어보니 출국심사부터 가능하고, 보안검색은 없단다. 작년 10월인가 한국에 긴 연휴 있을때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출국하느데 보안검색 통과하는데만 근 30분 걸린 기억이 있어 마음이 조급해 지느데, 깜짝 놀란게 그 긴 줄 처리하는데 10분이 채 안걸리더라. 줄 갈라지는 구간마다 직원이 배치되어 안내하고, 승객들도 벗을 것 벗고 꺼낼 것 꺼내 놓고 미리미리 준비하고 있다.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 면세점에서도 캐쉬어를 스테이션 식으로 한곳에 일원화 하여, 옆줄은 주는데 내 줄만 그대로인 열받는 경우는 아예 사전 차단이더라.
담배만 해도 그렇다. 공항내 금연은 이제 상식이긴 하지만, 담배가 좀 댕긴다 하는 시점에서는 여지없이 스모킹 룸 사인이 보이고, 여행가방 쇼핑가방 줄줄이 들고 화장실에 가도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짐 놓는 곳은 어떻게든 있다. 하물며 남자 소변기 옆에 우산걸이도 만들어 놓는 나라가 일본이니.
일본어를 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일본에 터잡고 산 적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일본통이라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일본에 대한 내 경험은 이렇다. 일본이란 나라 말 그대로 예측이 가능한 나라다. 하다 못해 식당에 들어가도 1000엔짜리 음식이면 대략은 1000엔에 맞는 질과 서비스이고, 3000원짜리 음식이면 딱 그에 맞는 질과 서비스다 (물론 같은 식당에 서비스는 음식 가격별로 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다 잃어버린 20년 디플레이션 덕이라고는 하지만, 물건 가격 마저도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게 없다. 자판기 캔커피는 그때나 지금이 150엔이고, 호텔비도 택시비도 마찬가지다. 호텔방 비우고 오후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청소되어 있고 (중국이고 미국이고 들쑥 날쑥해서 아침에 잠깐 나왔다 들어갔는데 청소가 안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오후 5시에 들어갔는데 아직도 개판인 경우도 있다), 비품 하나도 쓰고 나면 다음날 보충 안 되어 있는 경우가 없다.
여기까지는 일본의 좋은 점.
하지만, 이런 시스템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일본 사람들은 리스크에 대한 생각이 어떨까 궁금하다. 평생을 1000엔을 내면 1000엔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받고, 어느 지역 어느 동네를 가나 규격화된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고, 하다 못해 열차, 버스 도착시간까지 안내표에 딱딱 맞춰 진행되는 사회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월화수목금금금 하루 16시간 죽기 살기도 일해도 보상 한푼 없을 수 있는, 그렇고 그런 기술이지만, right time right place 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룻밤에 일확천금이 가능할 수도 있는 벤처 사업에 쉽게 뛰어들 수 있을까?
물론 일본이 2차 대전 직후 잿더미에서 여기까지 온데는 수많은 벤처형 비지니스의 공헌이 컸을것이다. 소니가 그러했고, 토요타가 그러했고, 닌텐도가 그러했단다. 이번 학회 기간 중 방문했던 Sysmex 란 회사 역시 현재는 hematology 사업에서 전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측정기기 기업이지만, 시작은 오디오 스피커 만드는 사업에서 시작했단다. 이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업종을 진화해 가면서 일군 경제가 지금의 일본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일본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3박4일 방문하는 여행객 입장에서는 예측가능한 일본사회가 부럽고 배우고도 싶지만, 평생을 거기서 살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뭐랄까 지루하고 따분한 인생이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 결국 벤처산업이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은 어느정도는 예측이 불가능한, 예를들어 종종 사기도 당하고, 개천에서 용도 나고 하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