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어디엔가 방치해 놓았다가, 이번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연휴기간 드디어 다 읽었다. 한없이 느리고 목가적인 중세의 유럽이 속도 (가속도) 라는 사회적 테제를 통해 어떻게 현대의 사회로 발전해 왔는지 그 경로와 의미를 깨알같이 적어 놓았다. 독일인 특유의 길고 장황함이 독서의 장애 요소지만, 도입부에서만 조금 고생하면 중간 이후부터는 익숙해 져 쉽게 넘어간다 (번역이 잘 된 것 같다).
선박이 침몰하여 생때같은 아이들이 수장되고, 지하철이 추돌하여 수십명이 다치고등등의 반복되는 사고의 배후에는 생산성에의 집착이 도사리고 있다. 기업성과의 지표도 기본적으로 주어진 시간 (분기, 반기, 일년) 자산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시장기대를 초과하는 이익을 창출하느냐에 맞추어져 있다.
“시간이 돈이다” 란 말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일화가 아니라, “이자” 라는 개념이 도입되며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을 억누르는 말이다. 수백년에 거쳐 속도의 개념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이 되었고, 또 하나의 기둥축이던 공산주의가 1990년대를 거치며 완전히 몰락하며, 속도의 추구는 이제 국경을 넘어 전지구적 테제가 되었다. 패러다임은 돌고 돈다 하지만, 앞으로 수백년 속도의 개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스템의 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제학에 “외부효과”란 개념이 있다. 사업 수행 과정 중 의도하지 않게 발생한 이익 혹은 손해 효과를 말하는데, 크게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 예를들면 공공자금으로 수행된 연구결과를 기업이 무상으로 활용하여 혁신을 일으켰다면 이는 긍정적인 효과이며, 반대로 사업활동에서 기름유출등 환경오염을 발생시켰다면 이는 부정적인 효과이다. 기업이 의도한 바가 아니므로,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기업은 그 효과에 대해 책임 (비용) 을 부담하지 않는데, 누군가는 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이는 사회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즉, 기업이 외부효과를 통해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면, 사회에 그만큼의 이익을 환원해야 하고, 반대로 부정적인 비용을 발생시켰다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번 세월호 침몰의 원인중 하나가 무분별한 선박증축 그리고 이에 따른 승객, 화물 과적이라도 하던데, 이익을 추구하는 선사의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사회적, 법률적 제한이 없다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 (생산성) 를 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 제한이 없다면, 과적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명사고는 외부효과로 간주할 것이다. 사회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과적이 적발되었을때 부담해야 하는 기회비용의 수준이다. 과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1억원이고, 적발되었을때 발생할 수 있는 기회비용이 500만원이라면, 합리적인 의사결정에서는 과적을 허용해야 한다. 적발될 확률이 10% 라 할때, 과적의 기대비용이 기대수익을 초과하기 위해서는 과적이 적발될 경우 발생비용이 10억원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과적은 없어진다.
관피아가 척결되는 전면적 국가개조를 계획한다고 하던데, 관피아의 문제는 인맥과 영향력을 통해 과적이 적발될 확률을 낮추고, 과적에 대한 벌칙금 수준을 제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외부효과의 내재화를 교란시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는 능력있는 전직관료가 고용될 수록 정도가 심해진다.
인문학과 기술이 융합되어야 한다는데,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는 기술적 원인은 엔진 수준의 향상, 연료 효율, 공기저항의 극복등이겠지만, 인문학적인 이유는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속도의 추구를 멈출 수 없다면, 인문학적으로 속도를 제어하는 제도와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