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라인이라 하면 주로 신제품 개발에서 많이 쓰는 용어지만, 사실 진행이 단계별로 이루어지는 비지니스 활동에는 모두 적용되는 개념이다. 신제품 개발이라는 것이 워낙 성공률이 높지 않고 (신약개발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 그러다보니 단계별로 의사결정이 복잡해 파이프라인이란 용어가 많이 쓰이지만, 영업쪽에서 신규고객 개발에서도 많이 쓰이고 영업관리 측면에서 파이프라인 관리를 위한 여러가지 metric 도 개발되어 있다. 영업쪽에서 쓰는 Sales Funnel 혹은 Sales Pipeline 개념을 정리하면 대략 아래 그림과 같다. 먼저 상품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고, 구매가 일어나도록 영업활동을 집중하고, 거래를 발생시키고, 거래 이후의 고객 관리의 4단계로 진행된다.
사업개발 혹은 business development 라는 것도 말 자체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성상 영업활동이다 보니, 전시회나 학회를 참가하고 나면 거기서 만난 각종 사람들을 고객으로 만들어 지속적인 거래를 유도하고자 이어지는 일련의 활동, 즉 Follow up 이 매우 중요하다.
전시회에 부쓰를 설치하고, 발표 세션에 참가하여 제품에 대해 발표하고 등등의 활동은 소위 lead generation 으로 잠재고객의 관심을 유발하고자 하는 목적이고, 다음단계는 이들을 prospect (잠재고객) 으로 진화시키는 활동이 필요하다. 사업개발에 있어 이 단계 필수적인 투입요소가 명함과 브로셔이다.
총천연색에 최고급 종이를 써서 블링블링 브로셔를 만든다고 해도, 관심 있는 잠재고객이 나중에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를 누락했다면 그 브로셔의 가치는 30점 밖에 되지 않는다. 부쓰에 찾아온 잠재고객에게 온갖 sales pitch 를 다하여 붕뜨게 만들었다 해도 나중에 연락할 수 있는 명함을 주지 않았다거나 혹은 받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평가는 30점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는 명함을 주는 것보다 받는쪽에 더 후한 점수를 준다).
참가 목적이 selling 이냐 buying 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부하직원들 학회나 전시회에 출장 보내고 나면, 항상 체크하는 것이 받아온 명함의 수 그리고 질이다. 뭣도 모르고, 전시회 돌아다니며 브로셔만 한아름 챙겨오는 친구들 있는데, 그 친구들 나중에 인사고과에서 왜 낮은 점수 받았는지 궁금했다면 여기에 그 해답이 있다 (그래도 기념품만 챙겨오는 친구들보다는 브로셔 챙겨오는 친구가 조금은 낫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번 BioPharm Asia 에서 받아온 명함 분류별로 나누고, 잠재고객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이메일을 쭉 돌렸다. 한두 페이지 짜리 상품에 대한 leaflet 혹은 flyer 를 첨부하는 게 중요한데, 학회 자주 참석해 본 분들을 알겠지만, 학회에서 주는 각종 안내자료나 브로셔들 그리고 전시회 돌아다니며 챙긴 브로셔들만 해도 한아름이다. 대부분은 호텔방 휴지통에 버리고 가거나, 아니면 마지막날 분류해서 정말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대부분 lead 단계이기 때문에 이메일을 보낸다 해도 쓸 말이 그닥 많지 않다. 간단한 감사 인사 그리고 더 간단한 제품 소개, 마지막으로 앞으로 협력기회를 모색해 보다는 상투적인 제안 혹은 조금은 구체적인 tentative proposal 정도다. 따라서 고객별로 보내는 내용이라 봤자 다 거기서 거기이길래 마음 같아서는 단체메일로 보내면 좋겠지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수신인 bcc 로 넣어 단체 메일 보내는 것이다. 아무지 냉냉한 비지니스 세계라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감성이 묻어나지 않는 이런 단체 메일은 차라리 한 보내느니만 못하다.
시간도 많이 들고 귀찮기도 해도, 한땀 한땀 정성 스럽게 최대한 customzied 된 이메일을 보낸다.
비행기 비지니스 혹은 퍼스트 클래스를 타면 최소한 사무장은 각 좌석 손님들 직함과 last name 정도는 미리 공부해 놓는단다. 비행기 이륙전 사무장이 돌면서 인사하는데 보면 김부장님, 이사장님, 최이사님 하고 아는 척을 한다. 내가 비지니스로 주로 출장 다니는게 2008년 사업부장 진급 이후인데 아마 대한항공에서 내 고객정보 거기까지만 update 되었나보다. 요즘도 타면 부장님, 부장님 하는데, 부장과 사업부장은 직급 자체가 다른데다가, 이직 이후 지금은 (회사는 작아도) 전무인데, 부장님 부장님 하니 그닥 듣기 좋지 않더라. 내 입으로 저 이제 전무인데요 하기도 우습다. 불완전한 customization 의 저주라 하겠다.
지금 이번 학회에서 만난 모 말레이지아 분께 메일을 쓰는데 그 분 Full name 이 Prof. Dr.Tunku Kamarul Zaman Tunku Zainol Abidin 이다. 명함에 그렇게 써있다. 아 심히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