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il lies in Detail

어제 임원조찬회에는 여든이 다 되신 원로 작가께서 오셔서 일본 명치 유신에 대해 강연해 주셨다. 주제와는 관계없지만, 재미 있었던 일화 한가지.

“내 나이 이제 여든인데 이 파워포인트 자료 손수 만들었습니다. 사진을 좀 넣고 싶었는데, 당췌 관련 사진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몰라 난감합디다. 이때 대학원 제자 한 놈이 선생님 제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하고 구글 이미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사진은 무엇이던 있더군요. 덕분에 오늘 발표 자료는 사진이 아주 많습니다. 혹시 구글 이미지에 내 사진도 있을까 궁금해 지더군요. 그래서 검색해 보니, 장장 열다섯 페이지에 걸쳐 깨끗이 정리해 놓았더군요. 단순히 사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시간별 장소별 주제별로 정말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습디다. 그때 깜짝 놀랐습니다. 아 이래서 구글이 위대한 회사구나. 나말고는 전세계 누구도 찾지 않을 이런 사진까자 신경 써서 깨끗이 정리해 주는 구글. 절대 돈이 되지 않을 이런일을 스스로 먼저 하는 구글. 이제 세상은 경제논리로 풀어서는 안 됩니다. 인문학의 논리로 풀어야 합니다”

총론은 맞고 각론은 틀렸다. 구글에서 선생님 사진에 신경쓰는 것은 살과 피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소프트웨어 코드인 web crawler 뿐이다. 구글이 돈도 안 되어 보이는 이런 검색에 신경 쓰는 것은 인문학적 소양때문이 아니라, 이를 통해 검색광고라는 막대한 수입을 올리기 때문이다. 예전 라디오가 처음 나왔을때 라디오 안에 분명 사람이 들어 있을거라 생각했다는데, 어제 시간이 있었다면 서치엔진의 작동 원리와 비지니스 모델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다.

개화기 일본의 선각자와 조선의 선각자를 비교하고, 후세에 이들이 어떻게 각인 되었는지 우리 역사 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참 유익한 강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입부에서 나온 이런 난센스때문에 강연 내내 저 얘기도 사실이 아닐지 몰라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워낙 달젼의 작가분이라 아이스 브레이킹 할 만한 다른 유머도 있었기에 저 구글 얘기는 있어도 없어도 상관 없는 사소한 것이었지만, 나 같은 청중을 강연 내내 강연의 디테일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었으니, 확실히 evil lies in detail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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