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

이공계 교수가 정부 연구비 관련 비리로 조사 받을때 단골처럼 나오는 메뉴가 학생들에게 돌아갈 인건비를 다시 걷어 착복했다는 것이다.

연구비가 지금처럼 풍족해지기 전 90년대 혹은 그 이전에 국내 이공계 대학원 다녔던 사람은 다 알겠지만, 워낙 연구비가 없는 시절이라 정해진 인건비 다 지급하고 나면 실제 사용할 시약재료비나 기기구입비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시절이었다. 규정은 규정이니 과제에 참여하는 대학원생들 개인계좌로 인건비 입금시키고, 다시 그걸 찾아 실험실 연구비로 쓰곤 했었다. 당연히 규정 위반이고 교수 개인이 착복할 소지가 있는 관행이었지만, 내가 다녔던 실험실도 그랬고 주위의 어떤 실험실도 (100% 확신은 못하지만) 그 돈으로 교수가 호의호식하는 것 본 적 없다. 그래서 뉴스를 볼 때마나 당연한 관행을 가지고 저렇게까지 교수 개망신을 주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 헌재소장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이와 같다. 한 개인의 품성이나 태도의 문제라면 그 사람 하나 잡아 내어 공직에서 제거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만일 이 양반의 코메디 같은 처신이 법관들 사이에 널리 퍼진 관행이라, 뉴스를 보는 다른 법관들이 뭐 저런 것 가지고 저렇게 난리를 하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이다.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규정을 만들어 옭좨는 것도 문제지만, 규정을 어기는 것이 마치 관행처럼 정착되어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바보되는 세상이라면 그건 더 문제가 아닐까? 뭐라더라 30만원까지는 증빙 없이 자유롭게 써도 되는 특정업무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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