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미스매치

저녁 먹고는 나른한 기분으로 몇일전 집으로 배달온 매경이코노미 집어 읽다보니 이번 호 특집은 일자리 미스매치 해결해야 한다이다. 젊은 구직자는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막상 기업은 쓸사람 없다고 비는 자리가 넘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기업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중소기업이 특히 심하단다. 그리고 이 미스매치의 충격은 기업보다도 구직자에 훨씬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사회 시작부터 실업자로 시작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재미있었던 부분이 많은 대졸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론 낮은 연봉이나, 대기업 대비 열악한 복지혜택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직장생활을 중소기업에서 시작하게 되면 평생을 중소기업에서만 돌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란다.

15년을 대기업에서 일하다 벤처 기업으로 옮긴지 반년 남짓인데, 이 얘기에 일부 공감이 되기도 하더라. 지금 우리 회사 직원들 보면 대기업에서 일하다 옮긴 친구도 있고, 처음부터 벤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 다른 전문직종에 있다가 옮긴 사람등등 다양하다. 그런데 확실히 일을 해보면 대기업 경험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차이가 나더라. 누가 더 낫고 아니고의 문제라기보다는 대기업 출신들은 일을 시작하기 앞서 이 일을 왜 해야 하고 어떤 목적을 타게팅해야 하는지 일의 설계에 시간을 많이 쓰는 데 반면 그렇지 않은 분들은 여기에 들이는 시간이 현저히 적다. 그러다 보니 일이 끝날때쯤 보면 원래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을 가져오기도 하고, 또 중간중간 일이 틀어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낭비요소도 많이 생긴다. 더 딱한 것은 고집들은 또 왜 그리 센지 당초 의도를 잘 못 이해하고 시작했음이 분명해 졌는데도 에지간하면 자기 결과물을 그냥 밀어부치려는 경향도 강하다.

그럼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15년 대기업 경험으로 본다면 대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시스템적 직무교육을 시킨다거나 아니면 회사 선배 하나하나가 엄청 훌륭하여 도제식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거나는 절대 아닌 것 같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일정 규모 이상의 hierachy 조직 생활이 주는 자연적인 레슨이 아닌가 싶다.

대학은 교육기관이고 대학교수들은 사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들이다. 공부 많이 하고 똑똑한 구성원으로 친다면 우리나라에서 대학 따라갈 수 있는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으로서 대학 시스템을 보면 엉성하기 그지 없다. 세계 100대 대학 랭킹에 끼는 대학이 손가락에 꼽기도 힘들 정도라는 우리나라 대학의 후진성도 여기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갑자기 대학으로 주제가 빠진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똑똑하고 훌륭한 지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학은 (꼭 우리나라뿐은 아니겠지만) 구성원간 공식적 갈등 조정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갈등이란 것이 단순히 개인간 악감정을 풀고 화해하는것이 아니라 예를들어 구성원간 의견이 갈리는 경우 이를 조정하고 봉합할 authority 가 있는 공식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사실상 오너가 북부터 장구까지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적 좋고 장래 유망한 기업이라 해도 오너 독단이 대부분이지 갈등조정은 고사하고 업무 자체에 대한 어떤 암묵적 매뉴얼이랄까 공식 시스템이 없는 곳이 태반이다. 또 여기서 말하는 공식 시스템이란 컨설팅 회사 동원해 만드는 열장짜리 매뉴얼이 아니라, 조직에 의해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암묵적인 authority 를 갖는 그런 뭐랄까 성문법이 아닌 불문법을 말한다. 대학처럼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있는 기관도 이런 조정기구가 없어 교수들간 한번 개인 감정이 생기면, 평생을 서로 안 보고 사는 일이 비일비재한 판에, 일반 중소기업에서 이러한 공식적 시스템 마저 없다면 직원들이 3년을 일하던 5년을 일하던 특정 업무의 스킬은 늘지 몰라도 소위 제너럴리스트로의 능력은 대기업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경력이 아무리 올라가도 소위 큰 일을 맡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결국 이것이 내가 느낀 대기업 출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간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결국은 중소기업이 해야 할 일은 암묵적 업무매뉴얼, 공식적 갈등 조정기구를 만드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잘 되어 있어야만 지속가능한 사업도 가능하다고 본다. 연봉은 사실 자존심과도 연결되기에 취업에 있어 일순위로 고려되는 요소다. 하지만 난 아직 우리나라 젊은이들 상당수 젊은 시절 사회에 대해 배울 기회가 확실히 주어진다면 연봉에 앞서 대기업이던 중소기업이던 선택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배울 기회는 직원들 연수지원해 주고 교육비 대주고 하는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 조직 분위기 결국 기업문화에서 시작된다.

뭐 일 적고 돈 많이 주는데가 장땡이라 고집하는 친구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알기로 일 적고 돈 많이 주는 대기업 우리나라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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