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 도 마케팅이라 생각하면, 무려 10년 넘은 기간 마케터로 살아왔기에, 고객에게 기대감을 심는 데 있어 매우 신중하다. live up to one’s words 란 말처럼 높은 기대감은 단기적으로 달콤한 유혹이지만, 이후의 실망은 정확히 그 기대감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그리고 그 사람사이의 권력을 다루는 정치에도 워낙 무관심한터라, V3 백신을 개발했다는 안철수씨가 서울의대 졸업한 의사 출신인지도 사실 알게된지 얼마 되지 않는다. 작년인가 오세훈 시장 사퇴로 서울시장자리가 공석이 되었을때, 현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씨 사이에 단일화, 양보 뭐 그런 기사를 통해 이 양반이 정치에 관심이 있게 되었구나 알게 되었고, 김제동 그리고 누구더라, 뭐 유명한 작가 선생과 함께 청춘콘써트에 단골 연사로 나온다는 기사 보고서야 이 양반에 대한 친근감이랄까 그런게 생겼다. KAIST 가 모교이다보니, 이 분이 거기 교수로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뭐 잠깐 계시다 서울대로 옮기시긴 했지만).
여기까지는 정치에 무관심한 대부분 사람의 티피컬일 것 같고, 이 분에 대해 결정적인 인상을 받은 것은 작년인가 그 전인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것이었는데, 거기서 단란주점 얘기가 나오니, 경상도 사투리와 서울말이 섞인 그 특유의 어눌한 어조로 “단란 주점이요? 그게 뭐하는 곳입니까?” 이 한마디였다.
사업한다고 접대한다고 모두 다 그러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곳은 가보지도 않고, 쳐다 보지도 않았을 수는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한 기업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로 십년을 넘게 계셨던 (그러니까 현실 경제란 시궁창에 같이 몸 담았던) 그런 분이 단란주점이 뭐 하는지도 모를까? 물론 예능방송이니 시청자들 웃기느라고 과장된 대본에 따라 그렇게 얘기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 한마디에 아 저 사람 공직에 나오면 언젠가 저 한마디에 발목 잡히겠군 하는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다운계약서, 논문 중복게재. 뭐 그럴 수 있다. 혹시나 싶어, 가지고 있는 매매계약서 보니, 나 역시 97년 처음 내 집 살 때 다운 계약서 썼더라. (실거래가를 아직도 백만원 단위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니). 중복게재까지는 아니지만, 한편으로 내야 마땅한 논문 토막 쳐서 두편으로 만든 적도 있다. 무임승차. 회사 들어와 아직 학교 미련을 못 버려 여기저기 신임교수 초빙공고 기웃거릴때, 나도 후배직원들 압력 넣어 논문에 크게 공헌한 바도 없으면서, 네번짼가 다섯번째 저자로 이름 올린 적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후보가 이번 사건으로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나는 그런면에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기대감도 주지 않았던 반면, 안철수 후보는 “단란주점이요? 그게 뭐하는 곳입니까?” 한마디로 국민들에게 만빵 기대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기존 정치에 빚진게 없는 사람, 혹독한 개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 이런 기대감에 열광했던 만큼, 똑같이 저지른 잘못. 남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이 분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신데렐라 공주는 유리구두 한짝을 들고 전국을 헤매던 왕자님과 만나 행복한 결혼을 했단다. 해피엔딩? 하지만, 결혼은 시작점이다. 일상, 출산, 육아, 경제 현실은 결혼에서부터 시작한다. 신데렐라 공주 결혼 후 왕자님께 매일 허리띠로 매 맞고, 왕자 못 낳는다고 왕실에서 왕따 당하고, 혹은 나라가 전쟁으로 폭삭 망해 적군 장군의 성노리개로 전락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동화에서는 결혼 이후 얘기는 없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은 사람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그 궁극적 목적이라면, 적당히 때도 묻고 인생에 대해 적당히 타협도 해 본 보통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세상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만 있다면 모를까, 단란주점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분이, 주폭이니 성매매니 그런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털어서 먼지 나오는 사람 없다는 속담만큼, 안철수 후보라고 어떻게 지금까지 고귀한 인생만 살아 왔을까. 현실 정치에 뛰어 들기로 결심하셨다면, 이제는 코골고 자는 모습도 좀 보여주시고, 자신도 똑같이 화장실에서 똥 눈다는 얘기도 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다.
(PS) 그러고보니 보통사람 노태우 대통령이 생각난다. 이 분 재임시 비자금 수천억을 쨍기고 감옥살이까지 하시면서, 자신은 절대 보통사람이 아님을 보여주신 바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