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나이가 들면서 자주 생각하는 단어가 바로 “꼰대”다.

“꼰대”의 정의에 대해서 검색해보니 대략 다음과 같단다:
1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

사전적 정의는 뭐랄까 좀 김이 빠진다고 할까?

나도 어렸을 때 그랬는지 모르지만, 능력 있는 부하직원들과 일하다 보면, 가끔씩 상사를 무시하는 태도 언듯 언듯 발견하게 된다 (뭐 그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밖으로 툭툭 터져 나오는 듯 하다). 이를테면 “당신이 나보다 나이가 많아 그 자리에 앉아 의사결정권 가지고는 있지만, 솔직히 나 아니면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 있어?” 뭐 이런식의 태도다. 오죽하면, 늙은이들 지금 바로 버려야 할 것은? 꼰대정신이라잖냐.

꼰대를 조금 더 확장해서 정의하며 대략 다음과 같겠다.
“남의 얘기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닫힌 사람들이 그렇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 또 지식인들 중에서도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하면서 마음을 열지 않은 사람이 이런 류(類)에 속하지 않을까? 우리사회의 갈등과 대립도 사람들의 이러한 폐쇄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이 정도면 중증 꼰대지만, 그래도 꼰대를 위한 한마디 변호를 하자면, 꼰대에게는 non-꼰대가 가지고 있지 못한 중요한 자산이 있는데, 바로 오랜 경험에 의한 패턴인식이다. 바둑이나 장기의 고수들 보면 도인의 경지에 이르면, 한 수를 놓기 전 앞의 20수를 먼저 예상한단다. 제한된 시간에 사람의 머리로 20수 앞을 내다 본다는 것은 한 수 한 수를 분석해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가능한 이유는 이들은 수 하나를 보는게 아니라, 전체 국면의 패턴을 보기 때문이다. 왜 과거 국사 공부할 때, 하나 하나 개별 사건을 암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을 일정 스토리로 엮어 주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아 이런 상황 과거에 경험해 본 적 있어, 다 좋아 보이지만, 이게 조금 비뚤어 진 것 같아. 이런 경우 일이 이렇게 풀릴 가능성이 커” 이런 식이라 할까?

계약서 하나 검토를 해도, non-꼰대는 하나 하나 조항을 다 읽어야 하고, 이에 의미와 맥락을 다 파악해야 하지만, 경험이 많은 꼰대는 한번 쭉 훑는 것만으로도 대략의 패턴을 읽어낼 수 있다. “아니 저 양반 어떻게 한번만 보고, 이런 질문을 하지?” 이게 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꼰대의 지혜다.

몇일전 면접을 본 신입사원에게 면접 결과를 통보하려고, 이메일 주소를 찾아보니, 시작이 paradigm_shift 이다. 맞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 해도, 패러다임 자체가 변해 버리면 그 숱한 경험이 다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경험은 패러다임에 맞추어 계속 update 될 때만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꼰대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꼰대의 고수는 그 패러다임 쉬프트 마저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에 의하면 A 상황은 B 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하지만, 이런 케이스에서는 A 라 해도 C 가 될 수 있어. 예전에 그런적이 있었거든”. 이게 유연한 고수 꼰대의 mind-set 이다.

과거 나 역시 “저런 꼰대들” 소리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제는 점점 등뒤에서 “어후 저 꼰대” 소리 듣는 나이다. 경쟁력도 딸리는 나이,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하지, 뭐 그리 쓸데 없는 책은 많이 보고, 책 봤으면 가만히나 있지, 뭐 그리 주저리 주저리 여기저기 글 올리냐 빈정도 듣긴 하지만, 나라고 할 일이 없어 그러겠냐, 40 중반 점점 꼰대화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최소한 꼴통 꼰대는 아니었으면 하는 몸부림이라 이해해 주었으면 싶다.

One comment
  1. 익명 2015년 2월 12일 at 9:41 오후

    공감이 가는군요 ㅎㅎㅎ.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꼰대라고 속으로 욕 하면서
    저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꼰대라고 욕먹는 건 아닌지… 이런 생각이 요새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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