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후배가 간만에 한국 왔다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서 책 몇권 구입하고 싶다해서 추천하면서 든 옛 생각.
95년 학위 마치고 미국으로 포닥하러 갈 때 일이다. 홀몸으로 가는 거라 그닥 짐이 많진 않았지만, 대부분이 전공서적이어서 무게는 꽤 많이 나갔다. 중량 초과 되지 않으려 엄선한 책이었음에도 결국 중량 초과로 extra charge 물었으니 한글 소설이나 만화책 같은 것은 꿈도 못 꾸었다. 한국 흔적이라곤 김건모 CD 몇개 챙긴 것이 전부? 미국에 막 도착해서야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거기다 주변에 한국 사람은 없고 미국 친구는 잘 안 생기고) 심심해서 미칠 지경이더라.
특히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욕구가 절실하던데, 지금처럼 카톡이 있던 시절도 아니요, 스카이프 같은건 상상도 안 되고, 기껏해야 넷스케입으로 웹 접속하는게 고작인데, 당시만 해도 한글로 제대로 된 인터넷 사이트 드물었다. 언론사 인터넷 신문도 막 도입 단계였고, 실시간 방송 시청? 꿈도 꾸기 힘든 시절이었다.
어쩌다 한인 교회와 연락이 되었고, 한국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동네에 그래도 세탁소, 편의점, 식당 등등 하시며 사시는 한국분들 대략 30명쯤 되더라. 주일 예배나 수요일 구역예배가 끝나면 대개는 한식으로 식사를 같이 하기에, 나같은 사람한테는 구원이나 다름 없었다. (내 마흔 다섯 인생 중 주님과 가장 가까왔던 시절이었던 듯)
어쨋든 첫 구역 예배에서 모 장로님이 한글 성경을 선물하셨는데, 그것이 한참동안 우리집에 있던 유일한 한글책이었다. 내 평생 다시 또 그럴일이 있을까도 싶지만, 비교적 익숙한 신약은 물론 구약의 출애굽, 레위기등등에 시편, 잠언등 외경까지. 불타는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쨋든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세번이나. 내겐 매우 유익한 기회였다. (미국 한인교회에서 세례까지 받았지만, 지금은 다시 속세에 젖어 교회 마지막으로 나간지가 언젠지 감감하다. 주님이야 매일밤 함께 하지만..)
결핍은 수요를 낳고 강력한 수요는 불타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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