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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사과, 한국은 바나나?

지난달 대만 출장에서 오랜 시간 같이 보냈던 파트너사 사장님이 Jane Chiang 이란 여자분이다.

총 3박4일 출장중 이틀을 풀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함께 보냈더니 많이 친해져 마지막 밤 저녁시간엔 이런저런 개인적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Aesthetic 분야에 오래 계셔서 그런지 얼굴이 뺀뺀해서 나이 짐작이 잘 안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만 55세, 나보다 근 10살 연상 누나다.

상당히 professional 한 분이었지만, 근본은 속일 수 없는지 언듯언듯 부잣집 딸네미 특유의 뭐랄까 약간 경박스러움이랄까 그런게 묻어나더라. 나중에 알고보니 아버지는 cardiology 쪽으로 대만에서 유명한 의사선생님이고, 남편 역시 orthopedic 쪽으로 대만뿐 아니라 본토 및 홍콩 포함 범중화권에서 유명한 의대교수님이란다.

마지막 밤 저녁 먹으며, 자기 어릴적 대만엔 사과가 엄청 귀했는데, 자기 uncle (큰 아버진지 작은 아버진지, 외가쪽인지 친가쪽인지는 못 물어보았다) 이 장성이어서 자기네 집은 사과가 떨어진 적이 없었단다. 말 나온 김에 나 어릴적 한국은 바나나가 하도 귀해서, 소풍이나 가야 한개쯤 맛보고 했는데, 그나마도 아끼느라 안 먹고 있다가, 오후에 거무튀튀 변한 바나나 먹었단 얘길 하면서 서로 많이 웃었다.

50년 가까이 공산주의 치하였던 본토나 기타 동남아시아 국가와는 어떨지 몰라도, 홍콩, 대만, 한국 (distantly 일본도 포함하면) 등 비슷한 기간 고도성장을 경혐한 나라 사람들끼리는 뭐랄까 미국이나 유럽애들과는 공유할 수 없는 공통점들이 있다.

(낮에 타이페이 시내 차로 지나가다가 종교 얘기가 나왔는데, 대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교는 도교이고, 자기 남편은 관우신을 믿는다는 데에서도 또 빵 터졌다. 서울에도 동묘란 곳에 가면 관우를 모신 사당이 있다고, 삼국지로 주제가 쏠리니 갑자기 할말도 많아지고, 막히는 타이페이 도심도 순식간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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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자와 얻는자

조금전 문득 든 생각에, 옛날 삼국지에서 읽었던 어떤 구절이 생각나, 머릿속에 다시 한번 새길겸 해서 그대로 옮긴다. (영화 적벽대전에서 나왔던 유비가 조조 대군을 피해 백성들 이끌고 신야에서 강릉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유비를 들이치기 전 조조의 독백)

” 나는 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위해 제도를 고치고 세금을 덜었다. 무언가를 베풀려고 애쓰고 도움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백성들은 고마워 하기는 할지언정 나를 좋아하고 따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럼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사려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오랜 경험으로 결국 그러한 사고 팔기에서 보다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사려고애쓰는 쪽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비는 다르다. 나는 한번도 그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백성들에게 베풀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닌 어쩌면 그는 제도를 고쳐 백성들을 편하게 할 만한 안목도, 세금을 줄여 그들의 짐을 덜어줄 만한 재력도 없었다. 그가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껏 원래보다 더 나쁘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 정도이다. 오히려 백성들로부터 부양을 받고 도움을 입는 것은 언제나 그쪽이었다. 그러면서도 백성들은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 그는 민심을 사는 게 아니라 얻고 있다….
나는 처음 그것이 그의 오랜 곤궁과 불운에 대한 백성들의 단순한 동정이거나 그가 의지하고 있는 한실의 낡은 권위가 발하는 후광때문인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사고 팔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거래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주고 받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그 주고 받음이 끝나도 이어지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어떤 이득을 위해 백성들의 마음을 사려 했기 때문에 더 큰 이득에 내몰리면 그들을 팔아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이득을 주고 사지 않았기에 이득으로 팔아버릴 수가 없다.
내가 유비라면 처음부터 백성들을 데리고 떠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들이 굳이 따라 오더라도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지금쯤은 강를성에 들어 성벽을 높이고 녹각을 둘러세워 다가오는 적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비는 코앞에 닥친 싸움에는 거추장스럽기만 한 그들 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직 길 위에서 늑장을 부리고 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강릉성을 얻고자 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와 같은 치세의 원리가 있으며, 때로 그것은 내 자신이 믿는 원리보다 더 효과적임을 안다. 어쩌면 시절이 지금과 같지만 않았더라도 나 또한 그 원리를 따랐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난세다. 어지럽고 들떠 있는 백성들의 마음속에 성 하나를 얻는 것보다는 몇 만의 군사를 몰아 땅 위에 성 열 개를 얻는 게 훨씬 쉽다. 이제 나의 철기가 태풍처럼 휘몰아가면 그대가 백성들의 마음속에 쌓고 있는 성은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유비, 새삼 그대가 두려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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