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몰아서

80년대말 술먹고 놀기 좋아하던 시절, 주머니속 가진 돈으로 택시는 언감생심이다 보니 귀가는 항상 지하철이었는데 (당시는 학생용 정기권 패스라는게 있어서 한달에 몇천원인가 내면 몇번을 타던 얼마를 타던 학생은 지하철 요금이 정액이었습니다), 이 지하철이 신촌에서 11시반이면 막차라 걸핏하면 친구 하숙집에서 자고 집에 못 들어오곤 했다.

핸드폰은 고사하고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집에서 한번 나가면 내가 전화하지 않는 한 연락두절이니, 아침에 집에 들어오면 출근하신 엄니가 글자만 봐도 화가 엄청난 필체로 ‘들어오면 학교로 전화해라’ 전화 옆에 써놓고 나가셨다 (울 엄미 저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 모 사립여대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시다 정년퇴직 하셨습니다. 여기서 학교란 그 사립여대). 그날 저녁 엄니 만나면 한바탕 사단이 벌어지기 마련이었는데, ‘평생 니 아빠가 그래서 엄마 속을 긁더니 어쩌면 아들이란 놈이 똑같이 닮아 먹었냐’ 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외박이 좋으면 지금 집에서 당장 나가라’ 까지 등등. 엄니 화가 한 풀 꺾이면 항상 하시던 말, ” 전화 한 통 하는게 그렇게 어렵냐? 전화 한통만 하면 엄마도 걱정 않고 편하게 잘 수 있지 않냐”.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밤중에 술에 취해 길바닥에서 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누구한테 퍽치기 당해 쓰러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엄니 맘 모르는 것 아니지만 (대학생인 제 큰 놈이 또 지 아빠 똑같이 닮아 먹었습니다), 오밤중에 전화해 오늘 못 들어갈 것 같다 하면 전화통으로 욕 한바가지 일단 먹고, 그 다음날 집에 오면 좀 낫냐, 절대 아니고, 다시 또 ‘평생 니 아빠가 그래서 ~’ 로 시작되는 욕 한바가지 더 먹는데, 한번에 몰아서 야단 맞고 말지 뭐하러 오밤중에서 전화해서 전화로 한번, 나중에 얼굴 보고 한번, 두번 욕 먹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런 옛날 얘기 블로그에 주절 주절 쓰는 이유는 요즘 왠지 내 처지가 그때 그 상황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물론 술 안 먹고 일찍 집에 들어와 공부 열심히 하는 착한 학생이 되면 단박에 해결될 문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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