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자와 얻는자

조금전 문득 든 생각에, 옛날 삼국지에서 읽었던 어떤 구절이 생각나, 머릿속에 다시 한번 새길겸 해서 그대로 옮긴다. (영화 적벽대전에서 나왔던 유비가 조조 대군을 피해 백성들 이끌고 신야에서 강릉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유비를 들이치기 전 조조의 독백)

” 나는 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위해 제도를 고치고 세금을 덜었다. 무언가를 베풀려고 애쓰고 도움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백성들은 고마워 하기는 할지언정 나를 좋아하고 따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럼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사려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오랜 경험으로 결국 그러한 사고 팔기에서 보다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사려고애쓰는 쪽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비는 다르다. 나는 한번도 그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백성들에게 베풀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닌 어쩌면 그는 제도를 고쳐 백성들을 편하게 할 만한 안목도, 세금을 줄여 그들의 짐을 덜어줄 만한 재력도 없었다. 그가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껏 원래보다 더 나쁘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 정도이다. 오히려 백성들로부터 부양을 받고 도움을 입는 것은 언제나 그쪽이었다. 그러면서도 백성들은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 그는 민심을 사는 게 아니라 얻고 있다….
나는 처음 그것이 그의 오랜 곤궁과 불운에 대한 백성들의 단순한 동정이거나 그가 의지하고 있는 한실의 낡은 권위가 발하는 후광때문인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사고 팔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거래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주고 받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그 주고 받음이 끝나도 이어지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어떤 이득을 위해 백성들의 마음을 사려 했기 때문에 더 큰 이득에 내몰리면 그들을 팔아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이득을 주고 사지 않았기에 이득으로 팔아버릴 수가 없다.
내가 유비라면 처음부터 백성들을 데리고 떠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들이 굳이 따라 오더라도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지금쯤은 강를성에 들어 성벽을 높이고 녹각을 둘러세워 다가오는 적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비는 코앞에 닥친 싸움에는 거추장스럽기만 한 그들 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직 길 위에서 늑장을 부리고 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강릉성을 얻고자 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와 같은 치세의 원리가 있으며, 때로 그것은 내 자신이 믿는 원리보다 더 효과적임을 안다. 어쩌면 시절이 지금과 같지만 않았더라도 나 또한 그 원리를 따랐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난세다. 어지럽고 들떠 있는 백성들의 마음속에 성 하나를 얻는 것보다는 몇 만의 군사를 몰아 땅 위에 성 열 개를 얻는 게 훨씬 쉽다. 이제 나의 철기가 태풍처럼 휘몰아가면 그대가 백성들의 마음속에 쌓고 있는 성은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유비, 새삼 그대가 두려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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